지난 9월27일 열린 ‘927 기후정의행진’에서 녹색교통운동의 한 활동가가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중단을 위한 서명 캠페인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녹색교통운동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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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로 | 클리프(Climate in Fact) 대표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장롱면허다. 운전을 못해서가 아니라 평소 운전할 일이 별로 없어서다. 촘촘한 대중교통망을 놔두고 굳이 기름값 써가며 시내 운전을 할 이유를 못 느낀다. ‘마침’ 기후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나는 종종 수송부문에 대한 글도 써왔는데 대개는 이런 식으로 흐른다. 내연기관차의 온실가스 배출 통계를 거론하고, 유럽의 탈내연기관차 계획을 소개한다. 국내 자동차 온실가스 배출허용 기준은 솜방망이라 있으나 마나 하고, 정부는 확실한 지향점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당위로 가득 찬, 교과서적인 내러티브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ㄱ 기자에게 자가용은 필수재다. 광역급행철도(GTX)나 광역버스처럼 서울로 향하는 노선은 말할 것도 없고, 모세혈관이어야 할 마을버스도 신도시에 집중돼 있다. 경기도 3위 인구를 자랑하는 고양시에서도 도심을 벗어나면 수십분 버스 대기는 흔한 일이다. 반대로 자가용만 있으면 대중교통으로 2시간 걸리는 곳을 30분이면 갈 수 있다. ㄱ 기자의 눈에 수송부문 온실가스는 ‘차 권하는 사회’의 다른 이름이다. (고양신문 ‘기후위기 대응 지속가능교통 전환이 답이다’ 시리즈 내용)
수송부문에 인구감소라는 변수가 추가되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경북 청송군은 전국 최초 ‘무료버스’ 운행으로 호평받았지만, 그게 요술봉은 아니었다. 노선 추가나 정류장 증설이 없어 버스를 타려면 여전히 긴 배차시간을 각오해야 하고, 정시성 확보도 요원하다. 인구 감소 지역에 무턱대고 노선을 늘릴 수도 없고, 면허 반납을 고려해야 할 고령의 주민들에게 전기차를 권할 수도 없다. 이동수단이 마땅찮으니 동네에 발이 묶인 고령 주민이 많다. 이들의 수송부문 탄소발자국은 본의 아니게 전 국민 평균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경북 지역 ㄴ 기자는 수송부문 온실가스 문제에 더해 ‘이들을 공정한 소비 공간에 들어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까지 끌어안는다.(뉴스민 ‘기후로운 대중교통’ 시리즈 내용)
최근 녹색전환연구소와 리영희재단이 함께한 기후보도상 심사에 참여했다. ‘수송부문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같은 주제에서도 지역별로 바라보는 앵글은 달랐다. 기름차를 전기차로 바꾸자는 보편타당한 이야기도 어디서는 서울과 도심으로 집중되는 대중교통의 문제점을 외면한 채 자동차만 권장하는 꼴이 될 수 있고, 이동수단 자체가 귀한 어느 곳에서는 사막에서 우산 권하는 이야기일 수 있다.
나에게 해상풍력은 그저 잠재량 많은 재생에너지원이지만, 울산에선 쇠락해가는 지역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희망이다. 해상풍력단지를 지으려면 전용항만과 배후단지가 있어야 하는데 부지 찾기가 만만찮다. 울산저널의 기자는 지역에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칠까 조바심 나는 마음으로 후보지가 될 만한 곳을 찾아다니고, 행정 난맥상에 때를 놓친 유럽 항구도시에서 ‘우리는 저 길을 가면 안 될 텐데…’ 생각한다.
원주시는 분지 지형인 데다 빠른 도시화를 겪으며 기상청이 감시하는 국내 47개 지점 가운데 온도가 가장 많이 올랐다. 원주투데이 기자의 시선은 구름사다리를 잡은 아이의 손에 닿았다. 여름철 폭염에 표면온도 50도를 가볍게 뛰어넘는 놀이터 시설 때문에 놀 권리를 빼앗긴 아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맘때면 한해를 마무리하는 멋진 말과 글이 나오기 마련이니 인류세 관찰기도 슬쩍 숟가락을 올려본다. 기후는 모두의 문제이기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대표성과 다양성을 요구한다. 원론적으로 타당한 기후 담론도 종국엔 지역적 맥락에서 해석돼야 하며, 각 지역에서 끌어올린 생생한 문장이 기후 위기를 현실로 만든다. 그런 이야기들이 공론의 목록에 자연스레 더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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