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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역주행 교통사고 현장 앞에 꽃과 편지 등 추모 물품들이 놓여 있다. 하상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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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법률은 살인을 여섯 가지로 구분한다. 모살(謀殺), 고살(故殺), 투구살(鬪毆殺), 희살(戲殺), 오살(誤殺), 과실살(過失殺)이다. 모살은 계획살인, 고살은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의도가 명백한 살인, 투구살은 싸우다 벌어진 살인, 희살은 장난치다 벌어진 살인, 오살은 오인 살인(갑을 죽이려다 을을 죽인 경우), 과실살은 실수로 벌어진 살인이다. 이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과실살이다. 지금의 과실치사와 비슷한 개념이다. 아무리 실수라지만 사람이 죽었으니 처벌의 수위를 정하기 어렵다. 정약용의 《흠흠신서》에서 과실살의 사례와 판결을 살펴보자.
중국 직례성의 백성 이진이 이옥근과 함께 밭을 갈았다. 소가 말을 듣지 않자 이진은 소에게 돌을 던졌다. 돌이 소등을 타고 굴러 이옥근의 눈썹 끝을 가격했다. 이옥근은 파상풍으로 죽고 말았다. 이진은 벌금형에 처해졌다.
중국 절강성의 장씨 여인이 사기전에게 방세를 받으러 갔다. 사기전의 개가 장씨를 보고 짖어대자 사기전은 장씨가 물릴까 싶어 손으로 밀었다. 장씨가 넘어지면서 뒤에 있던 아이를 밟아죽였다. 사기전 역시 벌금형에 처해졌다.
황해도 재령의 13세 소년 강와정이 소 앞에서 막대기를 휘둘렀다. 소가 깜짝 놀라 날뛰는 바람에 소 등에 타고 있던 김석봉이 떨어져 죽었다. 가해자의 나이가 어리고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여 처벌하지 않고 풀어주었다. 이처럼 살인 의도가 없는 과실살은 처벌이 가벼운 편이었다.
살인의 의도가 없더라도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주의를 게을리하였다면 처벌이 무거워진다. 황해도 해주의 나뭇꾼 유각동이 낫을 들고 있는데 동료 나뭇꾼 강주변이 장난삼아 유각동의 팔을 잡아당겼다. 유각동이 뿌리치다가 자기가 들고 있던 낫에 배를 찔려 죽었다. 유각동은 유배형에 처해졌다. 전라도 전주의 백성 신덕문이 나무몽둥이로 이수만이 메고 있던 지게를 때렸다. 몽둥이가 부서지며 이수만의 귀뿌리를 강타했다. 이수만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신덕문은 유배형에 처해졌다.
유각동과 신덕문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사람을 죽일 의도도 없었고 죽을 가능성도 예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낫과 몽둥이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위험한 물건이니, 부주의하게 행동한 책임은 피하기 어렵다. 그래도 살인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9명이 사망한 시청역 역주행 사건의 운전자에게 대법원이 금고 5년형을 확정했다. 9명의 죽음과 5년의 금고형, 균형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행위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모두 살인은 아니다. 대개는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사회적 참사도 원인을 따져보면 결국은 과실이다. 형법은 고의와 과실을 엄격히 구분한다. 과실에 대한 책임은 물을 수 있지만 죽음에 대한 책임은 묻기 어렵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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