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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인공지능 시대가 열린다

    아이와 교감 같았던 AI와 협업…예술가의 역할은 '질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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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박제성 서울대 미대 교수가 최근 유튜브 '지식전파사'에 출연한 모습. 김호영 기자


    "지금은 어느 시대보다 개인이 알고리즘에 저항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다가는 그것들이 언젠가 나를 가두기 시작합니다. 예술가 역시 기술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인공지능(AI)과 협업해 미술 작품을 제작해온 박제성 서울대 미대 교수가 최근 유튜브 채널 '지식전파사'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생성형 AI 시대에 예술가는 무엇보다 질문하고 통찰력을 제시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2018년부터 초기 버전의 생성형 AI에 텍스트와 시를 입력해 이미지를 생성하게 하는 실험적 작업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AI를 협업자로 보게 됐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AI와의 작업에 대해 "아이와의 교감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녀에게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가 다음날 꿈에서 꾼 내용을 말해주곤 했다"며 "AI에 시를 입력하고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도 이와 같은 소통처럼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작업하는 동료로 대하는 태도는 그의 프로젝트에서도 드러난다. 박 교수는 지난 9월 열린 프리즈 서울에서 박서보 화백의 단색화를 AI로 재해석한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다. 당시 그는 AI가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될 수 있도록 AI에 '(___)'라는 이름을 붙였다.

    AI와 예술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박 교수는 미술의 패러다임이 기술 발전과 함께 바뀐 점을 짚었다. 그는 "새로운 물감이 개발되면서 화가들이 야외로 나가 빛과 공기를 포착할 수 있게 됐고, 사진의 등장으로 회화는 재현을 넘어 추상과 개념미술로 나아갔다"며 "AI 역시 예술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고 재정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늘날 생성형 AI의 발달의 역설도 지적했다. 박 교수는 "AI 모델이 발전할수록 정답에 가까운 이미지를 잘 만들어내지만, 오히려 모호하고 추상적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고 진단했다. 더 똑똑해지는 AI의 답변이 정답에 수렴하면서 이미지에 대한 해석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AI가 해체되거나 불명확한 이미지를 생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더 열려 있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서다.

    한때 쟁점이 된 챗GPT의 스튜디오 지브리풍 그림 생성 논란과 관련해선 "사람들이 예술을 즐기는 방법이 발전할 것"이라며 "더 독창적인 표현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교수는 기술을 이해하는 태도를 교육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그는 "AI와의 관계 맺기는 결국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도 통한다"며 "기술 자체보다 기술에 대한 태도와 감수성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카카오톡이나 SNS로 소통하는 것이 사람들의 대화 방식을 바꾸듯 AI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많아질수록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그와 닮아간다"며 "AI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과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그는 예술가로서의 주체성 유지도 강조했다. 그는"AI에 대한 존중을 넘어서서 주체성을 뺏기기도 그만큼 쉬운 시대"라며 "작가로서 AI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AI로 작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신선하고 새로운 작품으로 인정받는 시대는 곧 끝날 것"이라며 "앞으로는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보다 그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비판적 태도를 취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 교수는 예술가들이 오늘날 해야 하는 역할은 질문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예술가는 시대의 흐름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시대의 흐름과 미래에 대해 질문을 찾아내야 한다"며 "AI에 대해 고민하고 작품을 제작할 때 AI와 협업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AI를 '거대한 질문'에 비유했다. 사람들이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무엇을 아름답고 바람직한 삶이라고 부를 것인지를 묻게 하는 계기가 바로 AI라는 것이다. 그는 "결국 AI가 던지는 질문은 오래전부터 철학과 예술이 붙잡아온 질문과 같다"며 "다만 지금은 그 질문이 더 시급하고, 우리 일상 가까이 다가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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