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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박소란의시읽는마음]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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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성은

    공중에서 정지한 새 한 마리도

    대화에서는 오브제다

    소비되고 낭비되고 마침내 치워진다

    접시들이 허공을 날아다니다가

    산산조각이 난다 그 파편들조차

    대화에서는 소모되기 위해 존재한다

    날개가 부러진 새를 갖고 무얼 하지

    대화를 해야지 이런 식이었다

    타이어 자국에 엉킨 진흙은?

    대화를 하자 이것에 대해

    새가 눕고 뒹굴고 죽어간 진흙에 대해

    새의 죽음에 대해서? 아마도

    그러나 부러진 날개 쪽이 조금 더 흥미롭겠지

    사람들은 허공에서 저글링을 했다

    오브제들은 대화의 통로일 뿐이었으므로

    은밀한 암시, 암호, 비밀을 운반하는

    그리고 새가 날지 못했다

    그리고 새가 마침내 죽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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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이라는 게 참 징그러울 때가 있다. 둘씩 셋씩 모여 말을 주고받다 보면 이따금 차마 말할 수 없는 비극조차 말이 되어 “치워진다”. “날개가 부러진 새”도, 새의 죽음도 간단히 말해질 뿐이다. 거기에는 걱정과 염려를 내세운 퍽 그럴듯한 제스처가 곁들여지기도 하지만, 말이 자행하는 ‘소모’의 폭력에서 끝내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제스처는 폭력의 양상을 더욱 가시화하기도 한다.

    유난히 말을 많이 하고 돌아온 날, 그런 날 밤에는 어김없이 잠을 설치게 된다. 내가 함부로 말해버린 것들이 피투성이로 머리맡에 둘러앉아 내 구겨진 얼굴을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이런저런 주변의 이야기들을 잔뜩 주워듣고 그것을 무슨 전리품인 양 짊어지고 돌아온 날 역시 마찬가지다.

    말은 얼마나 위험한가. 말을 하는 너와 나는 얼마나 위태로운가. 우리가 나누는 ‘허공’의 ‘저글링’으로 인해 결국 우리는 피를 쏟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또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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