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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특파원 리포트] 글로벌 대만과 갈라파고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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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지난달 20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구글의 새로운 AI 인프라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센터 개소식에서 대만 라이칭더(賴清德) 대통령이 미국 대만협회 타이베이 사무소 레이먼드 그린(Raymond Greene) 소장과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 인프라 엔지니어링 부사장 아메르 마흐무드(Aamer Mahmood)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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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에도 한국처럼 판교(板橋·반차오)라는 이름의 도시가 있다. 이름만 같은 것이 아니라 수도 인근에 있는 위성 도시라는 점, 테크 기업들이 모인 업무 지구가 있다는 점이 판교신도시와 닮았다. 반차오 테크 타운의 규모는 판교보다 작지만, 구글·아마존·에릭슨과 같은 굵직한 외국계 기업이 상당수 진출해 있다.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로 대표되는 토종 IT 기업이 대부분인 판교와 다른 점이다.

    반차오 테크 타운의 핵심은 구글이 통째로 임대한 두 동의 빌딩이다. 13층 규모 건물을 구글이 직접 리모델링해 지난해 문을 열었고, 하드웨어 연구·개발(R&D) 센터로 활용 중이다. 미국 본토를 제외하면 해외 하드웨어 R&D 거점 중 가장 큰 규모다. 구글은 지난달 타이베이 스린(士林) 지역에 인공지능(AI) R&D 센터도 추가로 열었다. 마찬가지로 구글의 해외 AI 연구 기지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대만에서 판을 벌이는 건 구글만이 아니다. 엔비디아도 최근 스린에 실리콘밸리 본사와 맞먹는 규모의 대만 지사 설립을 확정했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7’ 기업 상당수가 대만을 핵심 R&D 허브로 활용하고 있다. 규제 부담이 거의 없고 세금 우대가 뚜렷한 싱가포르에 ‘아시아 본부’를 두고,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대만에는 대형 R&D 센터를 운영해 공급망 심장부를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 빅테크 기업들의 공식이다.

    구글 대만 지사 소속의 한 한국인 직원에게 빅테크 기업들에게 한국은 어떤 시장인지 물었다. “굳이?”라는 질문이 나오게 하는 곳이라고 답했다. 삼성·네이버·카카오 등 대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해 출혈 경쟁이 불가피한데, 이를 감수할 만큼 시장 규모도 크지 않다. 자국 산업 보호를 가장 우선시하는 배타적인 정부 기조, 강한 노조, 높은 규제 장벽까지 고려하면 한국에서 사업 규모를 키울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해외 기업 유치에 절박하고 임금도 낮으며 노동 유연성이 높은 대만이라는 훌륭한 선택지까지 있다.

    외국 회사들을 막아 우리의 ‘산업 주권’을 지켜낸 이 상황, 기뻐할 일일까. ‘한반도 천동설’적 시각을 벗어나 보면 “구글 지도와 우버 차량 공유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라는 평가가 한국의 냉정한 현실이다. ‘외세’에 담을 높이 쌓아 우리가 지켜낸 것은 무엇일까. 3000만명이 넘는 회원 개인정보를 단숨에 털린 쿠팡, 자멸적 업데이트로 4800만 사용자의 원성을 산 카카오톡 사태 등 ‘갈라파고스 한국’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대적으로 ‘지킬 것’이 적어 외국 기업에 문을 활짝 열어온 대만은 올해 약 7.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한국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 대만의 질주를 바라보며 냉정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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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베이=류재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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