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인 오스트리아] 〈上〉 아름다운 도나우강의 겨울
미술사 숨쉬는 ‘빈 미술사 박물관’… 고대 이집트~르네상스 작품 망라
모더니즘 정수 ‘레오폴트 뮤지엄’… ‘욕망의 화가’ 에곤 실레 작품 눈길
수천 년 예술사의 숨결을 품은 빈의 미술관들과 그 틈새를 채우는 미식(美食)의 길을 걸어보는 것만큼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 5000년 유럽 예술사 ‘빈 미술사 박물관’
빈 미술사 박물관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예술품을 한자리에 보존하기 위해 1891년 개관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문화유산부터 중세 회화, 르네상스와 바로크 걸작에 이르기까지 5000여 년의 유럽 미술사를 넉넉히 품고 있다. 빈 자연사 박물관과 마주 선 쌍둥이 건물로, 독일 출신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1803∼1879)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설계했다. 이 박물관은 처음부터 예술품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깊다.
중앙 계단을 오르면 시선은 자연스레 천장의 벽화로 향한다. 헝가리 출신 미하이 문카치(1844∼1900)의 프레스코화와 기둥 사이를 장식한 한스 마카르트(1840∼1884),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초기 벽화가 공간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선 16세기 플랑드르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대표작 ‘바벨탑’을 만날 수 있다. 빈 미술사 박물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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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눈길을 끄는 작가는 플랑드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피터르 브뤼헐(1525∼1569)이다. 귀족이나 종교를 찬미하던 회화 전통에서 벗어나 농민 공동체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 장르화의 선구자로 ‘농민의 브뤼헐’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현재 전해지는 브뤼헐의 유화는 약 40점에 불과한데, 이 중 12점이 이곳에 소장돼 있다. ‘농부의 결혼식’은 소박한 농촌 결혼식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바벨탑’은 하늘까지 닿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그 뒤편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감상을 마친 뒤에는 미술관 중앙의 ‘쿠폴라 카페’에서 여운을 이어가길 추천한다. 돔 천장과 대리석 기둥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본고장 아인슈페너(Einsp¨anner·비엔나 커피)와 자허토르테(Sachertorte·초콜릿 케이크)를 맛보는 순간, 방금 본 예술적 감상이 괜스레 더 깊어진다.
● 모더니즘의 숨결 ‘레오폴트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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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이후 오스트리아 등 서구 모더니즘 미술을 소개하는 레오폴트 미술관(위쪽 사진). 상징주의의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의 ‘죽음과 삶’(아래쪽 사진)을 비롯해 세계 최대 ‘에곤 실레’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관광청·레오폴트 미술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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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서구 미술의 얼굴이 궁금하다면, 박물관 거리 무제움스콰르티어(MuseumsQuartier)의 레오폴트 미술관으로 향할 차례다. 이곳은 표현주의 거장 에곤 실레(1890∼1918)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실레는 뒤틀린 인체와 감정의 흔적을 숨기지 않고 거친 선으로 화폭에 남긴 화가. 짧은 생을 살며 남긴 작품들엔 인간의 욕망과 불안, 균열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대표작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비롯해 ‘은둔자들’, ‘추기경과 수녀’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또 클림트의 ‘죽음과 삶’은 꽃과 장식으로 채워진 삶의 영역과 이를 노려보는 죽음의 형상을 극명하게 대비해 인간이 직면한 유한성을 묵직하게 드러낸다.
박물관 바깥도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마리아힐퍼 거리에선 현지 커피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고타 커피 엑스퍼츠’를 들러야 한다. 깔끔한 로스팅과 피스톤 원리를 이용한 추출 도구인 ‘에어로프레스’를 활용한 다채로운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빈 도심은 겨울에도 거리 예술이 조용하되 뜨겁게 숨 쉬고 있다. 곳곳에서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이 대형 벽화를 남긴 ‘카예 리브레(Calle Libre)’의 흔적이 넘쳐난다. 스페인어로 ‘자유로운 거리’를 뜻하는 페스티벌로 2014년부터 여름마다 열려 왔다. 고전과 현대 예술이 빈이란 도시 안에서 얼마나 자연스레 공존하는지를 보여준다.
빈=사지원 기자 4g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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