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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15세 여중생” 띄우자 1분만에 “월500-스폰”… 채팅앱은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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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성년 성범죄 온상된 오픈채팅

    ‘조건만남’ 단어조차 안 걸러내

    창원 10대 비극도 채팅앱서 시작

    美, 성착취 방치땐 형사처벌까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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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폰 가능. 월 4번 500(만 원).”

    8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한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서 ‘15세 여중생’이라고 글을 올리자 1분 만에 날아온 메시지다. 상대는 30대 회사원이었다. 5분도 되지 않아 ‘중딩(중학생)도 만남하나?’ ‘얼마예요?’ 같은 메시지 14건이 줄줄이 도착했다. 카카오톡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픈채팅방에서 ‘여중딩 놀아줄 사람?’ ‘전화할 오빠 구해요’ 등 대화방에 별다른 인증 없이 바로 들어가 익명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 ‘프라이버시’ 방패 뒤에 숨은 오픈채팅

    3일 경남 창원시의 한 모텔에서 여중생 김모 양(15) 등 2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표모 씨(26)가 피해자를 유인한 ‘덫’도 바로 카카오톡 오픈채팅이었다. 그는 2016년과 2019년에도 채팅 앱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미성년자를 꼬드겨 성폭행하거나 강제추행한 전력이 있었다. 누구나 접속 가능한 익명 채팅방이 성범죄자의 ‘안전한 사냥터’로 방치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아동 성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다는 카카오톡마저 성인의 무분별한 접근을 막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부산에선 한 남성이 ‘심심한데 전화할 사람’이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개설한 뒤 13세 여학생을 유인해 강제추행했다.

    카카오톡의 경우 성범죄 관련 신조어 등 금칙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채팅방 이름이나 닉네임에 유해한 단어가 노출되지 않도록 제어하고 있다. 또한 오픈채팅에서 아동·청소년 보호를 위해 법정대리인의 요청 또는 만 19세 미만 이용자 본인의 요청 있는 경우 서비스 이용을 제한하는 보호조치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 대화 및 오락을 표방하는 채팅방을 개설한 뒤 들어오는 미성년 이용자를 노리거나, 채팅방 이름에 유해 단어를 노출하지 않았지만 ‘여중딩’ 같은 키워드를 통해 미성년자 채팅방에 성인이 접근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익명성을 악용해 미성년자 방에 침입한 뒤 ‘한 명만 걸려라’ 식으로 시도하는 디지털 그루밍(길들이기)은 신고 전까지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카카오 측은 “‘조건만남’ 등 금지어나 이를 우회하는 채팅방 제목을 적발하도록 모니터링 범위를 넓히고 있다”며 “이용자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채팅방 내 대화 내용을 상시 모니터링할 수는 없다. 이용자 신고가 들어올 때만 한다”고 밝혔다.

    ● 중소 앱은 ‘조 건 만 남’ 띄어 쓰면 못 잡아내

    중소 채팅 앱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취재팀이 다운로드 10만 회 이상인 앱 10개를 점검해 보니, 전부 휴대전화 인증만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부모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라면 다른 절차 없이 성인 인증을 통과할 수 있는 구조다.

    10개 중 6개는 ‘조건만남’ ‘15세’ 같은 부적절한 키워드조차 검열하지 않았다. 키워드 필터링이 있는 나머지 4곳도 ‘ㅈㄱㅁㄴ’(조건만남) ‘용돈 만남’ 같은 변형어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심지어 한 앱에서는 44세 남성이라는 이용자가 ‘조건만남’이라는 단어가 검열되자 “띄어 써야지. ‘조 건 만 남’”이라며 훈수까지 뒀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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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랜덤 채팅 앱 내 성매매 암시 정보 등에 대해 시정 요구를 한 사례는 2021년 6653건에서 지난해 1만7377건으로 2배 이상으로 폭증했다. 올해는 상반기(1∼6월)에만 9148건에 달했다. 성평등가족부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 1187건 중 960건이 채팅 앱과 SNS에서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규제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플랫폼에 ‘미성년자에게 부적절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선언적 의무만 부과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연방법에 따라 플랫폼이 아동 성착취 정황을 인지하고도 ‘아동성착취중앙신고센터’에 신고하지 않으면 민사 제재는 물론이고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호주는 16세 미만의 SNS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플랫폼이 강제적으로 ‘1차 보호막’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미성년자 채팅방에 성인 접근을 막는 등 강력한 사전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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