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9 (화)

    [마감 후] 신약을 넘어 ‘플랫폼’이 팔리는 시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투데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이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기술수출을 달성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단순히 숫자만 불어난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면서 기술수출의 질적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플랫폼 기술이 있다. 플랫폼 기술은 특정 적응증이나 단일 후보물질 개발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치료제·제형·모달리티에 확장 적용할 수 있단 점에서 글로벌 제약사들이 가장 주목하는 분야로 자리 잡았다. 실패 확률이 높은 신약 하나에 베팅하기보다 다수 파이프라인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비용·시간·리스크 측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올해 성사된 굵직한 계약 상당수가 플랫폼 기술에서 나왔다. 에이비엘바이오는 4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이어 지난달 일라이 릴리와 뇌혈관장벽(BBB) 셔틀 플랫폼 ‘그랩바디-B’를 추가로 기술수출하면서 올해만 8조 원이 넘는 ‘빅딜’ 기록을 쌓았다.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기술 ‘ALT-B4’를 보유한 알테오젠 역시 2조 원에 가까운 신규 계약을 체결하며 플랫폼의 확장성을 입증했다. RNA 치료제 개발 기반 기술을 가진 알지노믹스 또한 1조9000억 원 규모의 파트너십을 확보하며 글로벌 BD 무대에 빠르게 안착했다. 이는 국내 기업 전략이 후보물질 중심 방식에서 기술역량 중심 구조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플랫폼 기술은 글로벌 빅파마들의 연구개발(R&D) 트렌드와 맞아 떨어진다. 개발 비용은 꾸준히 증가하고 성공 확률은 낮아지는 반면, 주요 블록버스터의 특허 만료가 연달아 다가오면서 대형 제약사는 파이프라인 공백을 최소화해야 하는 압력에 직면해 있다. 이 때문에 자체 연구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해졌고, R&D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외부 기술 도입이 핵심 전략으로 부상했다. 그중에서도 다양한 적응증으로 확장 가능한 플랫폼 기술은 포트폴리오 구성에 유연성을 제공하고 위험을 분산할 수 있어 가장 실효성 높은 선택지로 꼽힌다.

    국내 기업들이 최근 대형 계약을 연이어 성사시킬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항체약물접합체(ADC), 지속형 제형, BBB 셔틀 등 글로벌 신약 개발 흐름에서 핵심이 되는 기술을 확보한 기업이 속속 등장하면서 글로벌 빅파마와의 협력 기회가 자연스럽게 확대됐다. 이는 특정 기업의 단발적 성과가 아니라 산업 전반이 기술 기반으로 체질 변화를 이루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그동안 국내 바이오산업은 단일 파이프라인 성과에 기업 가치가 크게 좌우되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플랫폼을 보유한 기업은 하나의 원천기술을 다양한 파이프라인으로 확장할 수 있어 성과가 한 지점에 쏠리지 않는다. 이로써 위험은 분산되고 기업은 더욱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 ‘파이프라인 중심 기업’에서 ‘기술 기반 기업’으로 전환하면서 기업 가치의 안정성과 지속성이 담보되는 것이다.

    플랫폼 기술을 앞세운 국내 기업들의 연이은 대형 계약은 한국이 글로벌 바이오 생태계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액이 커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 산업이 기술을 축으로 한 고도화를 통해 질적인 성장 경로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K바이오가 국제무대에서 기술 경쟁력을 본격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 이번 흐름을 일시적 성과로 소비하기보다 중장기적 경쟁력 확보의 발판으로 삼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한국 바이오는 주요국과 나란히 경쟁할 수 있는 기술적 위상을 갖추는 데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이투데이/유혜은 기자 (euna@etoday.co.kr)]

    ▶프리미엄 경제신문 이투데이 ▶비즈엔터

    이투데이(www.etoday.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