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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과학세상] 운동의 항암효과 밝혀낸 ‘에너지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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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이투데이

    물리학의 한 분야인 열역학은 열이 포함된 에너지의 변환과 흐름을 다루는 학문이다(열도 에너지의 한 형태다). 열역학에는 유명한 법칙이 몇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에너지는 보존된다’는 제1법칙이다. 즉 에너지는 무에서 생겨나거나 무로 사라질 수도 없고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이다. 예를 들어 뜨거운 커피가 식을 때 열에너지는 주변 공기와 잔이 놓인 바닥으로 흩어진다.

    지구촌 신재생에너지 혁명을 이끄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얼마 전 2035년까지 탄소배출량을 7~10%만 줄이겠다고 밝혀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열역학 제1법칙을 떠올리면 수긍이 간다. 10년 전 파리기후협약(COP21) 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면서 엄청난 에너지 수요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결국 청정에너지를 크게 늘려도 일부만이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화학공학도였던 시진핑을 비롯해 지도부 다수가 이공계 출신이라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

    반면 신재생에너지에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닌(며칠 동안 흐리거나 비가 오는 경우가 흔하다) 우리나라가 배출량을 53~60%나 줄이겠다는 것은(심지어 AI 시대를 이끈다면서) 열역학의 관점에서는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생명도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소식(小食)이 장수의 비결이라지만 ‘곡기를 끊으면’, 즉 에너지 공급이 없으면 얼마 못 살기 마련이다. 오늘날 지구촌의 비만이 만연한 것 역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의 한 예다. 음식 섭취로 들어온 에너지보다 활동이나 배변으로 나간 에너지가 적어 그 차이만큼이 지방(화학에너지)으로 바뀌어 몸에 저장된 결과다.

    최근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는 운동이 암의 성장을 억제하는 이유 역시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운동, 특히 유산소 운동이 암 발생에서 종양 진행, 암 재발 등 모든 단계에서 억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작용의 결과인가는 잘 모르는 상태였다.

    암은 세포가 몸의 통제를 벗어나 무분별하게 성장하고 증식해 결국 생명까지 위협하는 병이다. 그런데 암세포 역시 활동하고 증식하려면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한다. 실제 암세포는 영양분 가운데 가장 유용한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있어야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암세포는 정상 세포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포도당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 암 진단 장비인 컴퓨터단층촬영(CT)은 방사성 표지를 한 포도당의 분포를 보여주는데, 그 결과 포도당을 끌어당긴 암조직이 모습을 드러낸다.

    운동을 한다는 것은 근육이 활동하는 것이고 따라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근육세포가 가장 좋아하는 에너지원 역시 포도당이다. 미국 예일대 연구자들은 고지방 먹이로 비만을 만든 생쥐에게 유방암세포와 피부암세포를 주입한 뒤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에만 쳇바퀴를 설치했다. 쳇바퀴가 있는 생쥐들은 수시로 올라타 돌리며 운동을 했지만 없는 쪽은 정적으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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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을 하면 근육의 포도당 수요가 늘면서 종양이 흡수하는 양이 줄어 성장이 억제된다. 운동 여부에 따른 포도당 흡수량을 보여주는 그래프로, 정적인 생쥐(빨간색)에 비해 운동을 한 생쥐(파란색)는 골격근(Gastroc)과 심근(Heart)에서 포도당 흡수량이 많지만 종양(Tumor)에서는 적다. 출처: P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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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주 뒤 종양 크기를 분석한 결과 운동한 그룹이 정적인 그룹보다 60%나 작았다.<표 참조> 체내 포도당 분포를 조사해보니 정적인 생쥐에 비해 운동한 생쥐는 종양 주변에서 농도가 낮았고 골격근과 심근 주변에서 높았다. 즉 먹이 섭취로 포도당(에너지) 공급량이 정해진 상태에서 운동으로 수요가 늘어난 근육에게 뺏기면서 포도당이 부족해진 암세포의 증식 능력이 떨어진 것이다.

    생체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변환과 흐름을 대사라고 부른다. 100년 전 독일의 생화학자 오토 바르부르크는 암 역시 대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간파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꽃핀 분자생물학은 암을 유전자 돌연변이 문제로만 보고 정복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21세기 들어 암 대사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운동의 항암 효과 역시 대사의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음을 명쾌히 보여줬다.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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