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 학술원 '한미 원자력 협력 추진 전략' 보고서
"핵연료·원전 EPC·SMR 상용화를 협력 3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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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핵연료와 원전 설계·조달·시공(EPC),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용화를 한미 원전 협력의 3축으로 실질적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전력적으로 미래 산업 생태계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종현학술원은 9일 한국이 직면한 전략적 선택지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한미 원자력 협력 추진 전략’ 보고서를 발간해 이같이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11월 최종현학술원이 ‘한미 원자력 동맹의 심화와 산업 생태계 구축’을 주제로 열었던 회의 논의를 기반으로 구성됐다. 회의에선 원전·SMR·핵연료주기·핵추진 잠수함 등 원자력 전 분야의 주요 전문가들이 참여해 한미 원자력 협력의 실질적 방향을 집중 논의했다.
김유석 최종현학술원 대표는 발간사에서 “원전, SMR, 핵추진 잠수함, 우라늄 농축?재처리는 개별 기술 이슈가 아니라 한국의 중장기 국가 전략을 결정하는 과제”라며 “한미 공조 확대와 국제 협력 논의가 본격화된 지금, 한국은 동맹과 비확산 체계 내에서 전략적 자율성과 산업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韓, 농축·재처리 기술 부재가 가장 큰 리스크”
그는 한·미 정상회담 뒤 공개된 팩트시트에 포함된 ‘민간 농축·재처리’ 문구와 관련해서도 “미국이 이를 전면 허용한 것이 아니라 절차적 검토를 인정한 수준일 뿐”이라며 “이를 곧바로 실질적 허용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손 교수는 한국이 EPC·운영·사업관리 역량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보유한 반면, 미국은 차세대 SMR 설계·지식재산권(IP)·외교력·기술 원천성에서 우위를 가져 양국 역량이 “비대칭적이지만 상호보완적 구조”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관심을 두는 핵심은 한국의 농축·재처리나 핵잠 기술 자체가 아니다”라며 “미국이 시급히 원하는 것은 원자력 발전 능력의 조속한 확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도 이 구조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현실적으로 가장 실현 가능한 협력 축은 대형 원전 건설 협력과 SMR 공동 전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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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간 구조적 파트너십 구축해 원전·SMR 전개해야
특히 고순도 저농축우라늄(HALEU) 확보를 단기·중장기 국가전략의 최우선순위로 규정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HALEU 생산시설에 한국 기업이 직접 참여해 기술·산업 협력을 조기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한·미 공동 연구개발과 오프테이크(Off-take) 계약을 통해 핵연료 공급망의 안정성과 상용화 속도를 높여 글로벌 원자력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할 것을 제안했다.
나아가 핵연료를 농축·제품화·트레이딩 관점에서 사업화하고, 안정적 공급망·국제 협력·규제 표준화를 기반으로 수익 기반을 확보해 국내 제조업 진흥에도 기여하는 균형 있는 경제 발전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대형 원전 경쟁력 강화를 위해 표준화·반복 시공 체계 확립, 전략적 기술 선택, 전문 인력의 세계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특히 미국 시장 진출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상황에 따라 APR1400을 앞세울지, AP1000을 선택할지에 대한 기술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황용수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 교수는 한미 원자력 협력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민수용과 군사 영역의 명확한 구분을 통한 비확산 신뢰 구축, 국내 수요와 수출 가능성을 포함한 상업적 근거 제시, 주력 사업자인 한수원을 중심으로 정부·학계·산업계가 일관된 입장을 마련할 수 있는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황 교수는 한국의 민수용 우라늄 농축 수요량이 약 400만 SWU 수준으로 경제적 근거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 32기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 수요량에 해당한다”며 미국에 농축 허용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이 수요를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한미 원자력 협정이 민수용에 한정된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아울러 협정 구조상 한국이 농축·재처리 분야를 추진하려면 상업적 필요성을 명확히 제시해야 하고, 이후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판단하는 ‘공동 결정’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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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SMR 기술력, 美 규제 신뢰성·시장 규모와 결합하면 ‘게임체인저’ 가능
한국의 SMR 경쟁력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형 원전 공급망, 한수원의 EPC·운영 실적, 그리고 국내 산업계의 실수요가 결합된 매우 유리한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심사 절차 간소화 움직임을 언급하며 “규제 협력이 선행돼야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역시 미국 규제 체계 변화에 발맞춰 대응하고, 민·관 협력 채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단장은 4세대 SMR 상용화 과정에서 가장 큰 난제로 HALEU 공급망 불확실성을 꼽았다. 그는 “프로젝트 추진과 연료 확보가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진전이 어렵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해법으로는 미국 내 농축 설비 투자 참여, 한·미·일 간 규제 표준화, 다자 협력을 통한 안정적 연료 공급 체계 구축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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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잠 도입은 전략적 선택··· 용도·연료·기술이전, 단계별 검증이 관건
함형필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이와 관련해 “2030년대 중반 대형함 사업이 종료되면 해군 예산 여력이 확대될 것”이라며 “1척당 2~5조원 수준으로 추산되는 한국형 핵잠 건조 비용은 감당할 수 있는 범주”라고 내다봤다.
반면 핵잠의 전략적 효과가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은 “핵잠 개발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국방 예산의 현실과 우선순위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핵잠 사업이 총 20조 원을 넘는 초대형 사업으로, 해군 전력 확충을 넘어 육·공군 전력 배분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근욱 서강대 교수도 “현재 논의 대상은 억제·보복 전력으로 활용되는 핵추진 탄도미사일 잠수함(SSBN)이 아니라 공격 임무 중심의 핵추진 잠수함(SSN)”이라며 핵잠 역할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일 잠수함연구소 소장은 “핵잠을 단순히 ‘게임체인저’로 보는 막연한 기대는 위험하다”며 “어떤 농축도(저농축·고농축)를 연료로 사용하는 원자로를 탑재하느냐에 따라 설계, 임무, 비용이 모두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수의 핵잠 도입이 오히려 디젤 잠수함 생산라인과 수출 경쟁력까지 약화시키지 않도록 산업 구조 전체를 같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진 기자 suns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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