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0 (수)

    [기고] 글로벌 스타트업의 약진… 제도는 언제까지 과거에 머물 것인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최근 한국의 수출 실적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끄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 덕분이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기반이 여전히 ‘반도체 원포인트’에 가깝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불과 2023년, 삼성 반도체는 15조 원, SK하이닉스는 8조 원 적자를 냈다. 극심한 사이클 산업에 국가 경제의 명운을 걸어온 구조적 취약성은 여전하다. 지금의 호황은 위기가 재연되기 전에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것일 뿐이다.

    한국은 수십 년 동안 소수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 의존해왔다. 이 구조는 산업화 시대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이제는 세계 경제 환경 변화 속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조선·반도체·방산이 선전하는 사이, 철강·자동차·배터리·디스플레이 등 많은 주력산업은 중국의 저가 공세와 미국의 보호무역 사이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수출로 성장한 나라가 수출 동력을 잃는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 더 다양한 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향해 도전하는 기업들이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일부 스타트업들이 이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K-POP 세계화를 주도한 ‘하이브’, 글로벌 빅테크 기업으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은 반도체 스타트업 ‘파두’가 그러한 사례다. 이들은 작은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무대에서 승부를 걸었고, 그 도전은 산업 전체에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두 기업 모두 상장 과정의 문제로 수사를 받는 상황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직면한 제도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고의적 기망이 있었다면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은 대체로 ‘범죄적 의도’라기보다, 고도 성장 단계에서 제도적 장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미숙함’의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스타트업이 상장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부실한 한국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스타트업에게 혁신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성숙한 대기업 수준의 규율을 동일하게 적용한다. 자본시장 제도는 과거 산업화 시대의 기준에 머물러 있고, 고위험·고성장 기업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한국 스타트업들이 해외에서 성과를 거두고도 정작 국내 상장과정에서 발목을 잡히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다. 이는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규제가 낡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제도와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상장을 준비하는 스타트업이 회계·공시·거버넌스 역량을 충분히 갖출 수 있도록 단계별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고의적 부정은 단호히 처벌하되, 미숙함에서 비롯된 오류는 개선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유연한 제도도 필요하다. 가혹한 처벌만으로는 산업을 키울 수 없다.

    고(故) 이병철 회장이 강조했던 ‘사업보국’의 정신은 독점적 대기업만의 구호가 아니다. 오늘날 그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이들은 오히려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스타트업들이다. 이들에게 성과를 바탕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익이다.

    한국 경제는 더 이상 과거의 구조만으로 지속될 수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싸우는 새로운 기업들이 필요하다. 지금은 그들을 키우기 위한 제도의 책임, 국가의 역할, 사회적 신뢰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할 때다. 호황은 영원하지 않다. 변화가 절실한 지금이 마지막 시간일지 모른다.

    경향신문

    고려대학교 융합경영학부 조용민교수


    고려대학교 융합경영학부 조용민교수

    최병태 기자 piano@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