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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매경춘추] 추천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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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이수정 한국IBM 대표이사 사장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나 옷을 사러 매장을 방문할 때, 혹은 온라인 쇼핑을 할 때 우리는 늘 '추천'이라는 선택지와 마주한다. 저관여 제품을 고를 때조차 다른 사람의 경험과 의견을 참고하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의 심리다. 그렇다면 예산과 책임이 크게 따르는 기업 환경에서는 추천이 지니는 무게가 얼마나 클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동료나 고객들로부터 기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곤 한다. 그런데 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추천하는 순간, 그 결과에 대한 일정한 책임까지도 함께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추천을 할 때마다 신중해진다.

    추천은 단순한 의견 제시가 아니다. 나의 확신 일부를 함께 건다는 의미다. 특히 기업의 기술 선택은 단기적 의사 결정이 아니다. 한 번 도입된 기술은 수년, 때로는 수십 년 동안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추천의 의미에는 지금의 성능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믿음이 담긴다.

    요즘처럼 기술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이 판단이 더욱 어려워졌다. 지난해까지 혁신적이라 평가받던 기술이 올해는 구식이 되기도 하고, 지금은 완벽해 보이는 솔루션이 내년쯤 지원이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나는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을 만드는 조직의 철학과 프로세스에 더 주목한다.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문화가 있는지, 피드백을 실제 제품 개선으로 연결하는 체계가 갖춰져 있는지가 결국 장기적 신뢰를 결정한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우리 회사의 기술과 솔루션을 추천할 때 비교적 확신을 가지고 답할 수 있다. 회사 소속이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검증과 피드백 과정을 거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기술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다. 사내 해커톤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반영되고,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한 사전 체험과 대중 대상의 공개 체험을 통해 제품을 다듬는다. 기술은 이렇게 사람들의 요구를 흡수하며 성장한다. 고객의 목소리는 기능이 되고, 동료의 아이디어는 서비스가 된다.

    화려한 마케팅으로 단기간에 주목을 받는 기업은 많지만, 오래 살아남는 기업은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는 기업이다. 기술 트렌드는 바뀌어도 고객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본질적 책무는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추천의 기준으로 삼는 핵심이다. 기업이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무엇을 실천하는가가 중요하다.

    흥미로운 것은 추천이 만들어내는 선순환이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새로운 고객을 만나고, 그 고객의 피드백이 다시 제품을 개선하며, 개선된 제품은 또 다른 추천을 낳는다. 이 과정에서 추천은 단지 거래의 출발점이 아니라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협력의 시작점이 된다. 경영자의 관점에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소비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기꺼이 권유되는 것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성장의 조건이 마련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 우리가 고객의 의견을 어떻게 다루는지가 내일 누군가가 우리를 떠올리는 이유가 된다고 믿는다.

    [이수정 한국IBM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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