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중 하나로 알려진 코피 루왁(Kopi Luwak), 일명 고양이 똥 커피는 원두 1파운드에 수백 달러가 넘는다. 이름만 들어도 특이한 이 커피는 왜 그렇게 비싸고, 또 왜 독특한 향을 내는 걸까? 인도 케랄라 중앙대학의 팔라티 시누 교수 연구진이 10월 말 발표한 사이언티픽 리포트의 논문에서 그 비밀의 일부가 밝혀졌다. 고양이 똥 커피의 향은 단순히 마케팅이나 희소성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사향고양이의 소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생화학적 변화 덕분에 생기는 것으로 보고했다.
사향고양이는 잘 익은 커피 열매를 먹고, 그 씨앗인 커피콩은 위와 장을 거치면서 장내 미생물들에 의해 고양이가 먹은 음식들과 함께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커피콩은 효소와 장내 미생물의 영향을 받아 단백질과 지방, 당류, 유기산의 조성이 달라진다. 특히 장내 미생물의 하나인 글루코노박터 속 균들이 활발히 작용해 당을 산화시키며 유기산을 만들고, 이들이 커피콩 속으로 스며들어 향미를 바꾸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양이 똥 커피와 사람이 수확한 같은 커피원두를 화학적으로 비교 분석해 보면 고양이 똥 커피에서는 카프릴산과 카프르산의 농도가 더 높게 나왔다. 이들은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향의 주성분으로 염소젖이나 버터 향을 내는 지방산 메틸에스터다. 또한 전체 지방 함량이 일반 커피보다 40%가량 높았다. 지방은 향기 분자들을 흡착하고 휘발 속도를 늦춰 고양이 똥 커피의 향이 오래 남고 부드럽게 퍼지게 한다. 또한 단백질과 카페인 함량은 다소 낮았는데, 이는 사향고양이의 위 속에서 단백질이 효소에 의해 분해되면서 짧은 펩타이드와 아미노산으로 전환되고, 일부 카페인은 흡수되거나 화학적으로 변형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고양이 똥 커피는 일반 커피보다 쓴맛이 줄고, 감칠맛이 증가되며, 산도도 낮아진다. 단백질이 줄면서 떫은맛을 내는 폴리페놀 결합이 감소하고, 카페인이 낮아지면서 자극적인 쓴맛도 줄어든다. 이 복합적인 화학반응을 통해 사람의 혀와 코가 느끼는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장에서 일어나는 발효 과정과 같이 사향고양이의 장에서 글루코노박터 같은 미생물들이 설탕을 유기산으로 바꾸고, 이들이 커피콩 내부로 침투해 새로운 향기 분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시누 교수팀의 연구는 커피콩을 볶지 않은 생두 상태에서 분석했다. 이는 과학적으로 매우 타당한데, 로스팅 과정에서 지방산과 향기 화합물이 급격히 변해 분석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사향고양이 소화 과정이 만들어내는 지방산 변화가 향의 근본 원인이며, 로스팅을 통해 그 차이는 더욱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가 즐기는 이 특별한 향 뒤에는 바람직하지 못한 윤리적 그림자도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향고양이를 좁은 우리에 가둬 강제로 커피 열매를 먹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공 사육형 루왁 커피는 품질이 낮고, 무엇보다 동물복지 차원에서 매우 심각하다 하겠다. 시누 교수팀이 야생 서식지에서 자연스럽게 얻은 배설물만을 사용해야 하며, 생태계 보전과 윤리적 소비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결국 고양이 똥 커피의 향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희소성이 아니라, 미생물과 효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 커피 한 잔에는 동물 생리학, 미생물 발효학 그리고 향기 화학이 모두 들어 있다. 우리는 그 향을 맡을 때마다 인간의 기술이 아닌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섬세한 생물화학반응의 경이로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것이 고양이 똥 커피가 가진 진짜 특별함이 아닐까.
[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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