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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0 (수)

    [손현덕칼럼] K반도체, 3개의 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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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지난 9월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칩 워(Chip War: 반도체 전쟁)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교수가 매일경제신문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독보적인 위상을 고수하고, 메모리반도체의 강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을 때였다.

    관심사는 '엔비디아 독주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였다. 세계 거의 모든 데이터센터가 GPU를 사용하고, 창업자 젠슨 황 한마디에 한국 반도체 기업의 주가가 출렁대는 비현실적 현실. 물건 팔러 한국에 왔는데 오히려 선물한다고 큰소리치는 슈퍼 갑(甲)이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비즈니스 세계에서 영원한 게 있을까. 그런데도 이 질문에 대한 밀러 교수의 대답은 "엔비디아 독주는 상당 기간 이어진다"였다. 준비된 반론이 있다. AI가 학습 위주에서 추론 위주로 바뀌는 변곡점에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전력 효율이 좋은 맞춤형 칩이 더 적절하고, 엔비디아의 아성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대해서도 밀러 교수는 고개를 젓는다. 이유는 두 가지. 아직 모든 AI 칩이 엔비디아를 대체할 수준은 안 된다는 점. 다 합쳐도 시장점유율이 1% 밑이었다. 두 번째는 이미 엔비디아가 구축한 생태계가 고착됐다는 것. 젠슨 황 스스로가 보물이라고 자랑하는 쿠다(CUDA) 때문이다.

    사실 엔비디아의 미래를 점치는 건 부질없다. 엔비디아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나 관심 가지면 될 일. 우리는 대한민국 반도체의 미래를 개척하는 게 중요하다. 어떤 경우라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첫 번째, 엔비디아와 겨룰 수 있는 AI 칩을 개발하는 것이고, 둘째 AI 칩 생산을 위한 제조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며, 셋째는 AI 칩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 초격차를 유지하는 일이다. 이른바 3개의 화살. AI 시대를 전제로 한다면 수순은 이러하나 K반도체 전략으로 보자면 수순은 거꾸로다. 우리의 현실과 역량을 감안해서 그렇고, 난이도를 고려해도 그렇다.

    첫 번째 부문의 경쟁자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다. 구글이 정확히 10년 전 알파고 때 개발했던 고성능 AI 반도체인 텐서처리장치(TPU)를 소환했고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가 경쟁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도 엔비디아가 여전히 '넘사벽'이다. 우리는 걸음마 수준. 혁신 생태계 조성부터 해야 한다. 기술만으로도 안 되는 세계다. 두 번째는 대만의 TSMC가 버티고 있다. 마라톤으로 치면 우리는 이제 스타트를 끊었는데 TSMC는 거의 반환점을 돌았다. 어림잡아 5년간의 잃어버린 시간. 그걸 회복할 때다. 세 번째는 아직 한국이 세계 1등. 그러나 중국이 턱밑까지 왔다. 어쩌면 우리가 추격자 신세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화웨이는 우리가 절대 우위에 있는 HBM까지 자체 개발했으며, 최근 뜨고 있는 낸드플래시 부문에서도 중국 YMTC의 약진이 눈부시다. 미국이 수입을 차단해서 그렇지 애플은 이 회사의 제품을 쓰려고 주문까지 넣었다. 삼성전자 고위 반도체 임원의 말로는 "우리가 시도하지 못한 새로운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였다"고 한다. 서울대 반도체연구소장을 하다 지난 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영입된 이종호 교수는 "곧 망할 거라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이제 와 보니 우리보다 한 수 위 같다"며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고 한다.

    마침 오늘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반도체 관련 기업 최고경영자(CEO) 4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반도체 전략회의가 열린다. 장비, 소부장 등 반도체 관련 수장들이 총출동하는 첫 회의다. 다행히 지금은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업들은 팀코리아를 이룰 확실한 전략을 짜고 정부는 파격적 규제 완화와 지원을 해줘야 한다. K반도체가 이 골든타임을 놓치면 언제 훅 갈지 모른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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