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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0 (수)

    [기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극찬한 K창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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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부경호 한국에너지공과대 에너지공학부 교수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창조적 파괴'가 지속성장을 견인했다는 사실을 입증한 연구에 돌아갔다. 노벨위원회는 지난 200년간의 성장은 끊임없는 기술 혁신의 과정이었고, 낡은 산업과 기술이 혁신으로 대체되는 과정이야말로 지속성장의 원동력임을 강조했다. 공동 수상자인 경제사학자 조엘 모키어는 자연 법칙을 설명하는 '명제적 지식'과 현장 작동의 '처방적 지식'이 맞물릴 때 유용한 지식이 축적되고 기술 혁신을 낳는다고 보았다. 공동 수상자인 필리프 아기옹과 피터 하윗은 기업의 연구개발로 더 나은 제품과 공정을 낳아 기존 강자를 밀어내는 세대교체가 성장 엔진임을 수학 모형으로 정립했고, 그 성과가 소수 독점으로 굳어지지 않게 국가가 보호·조정해야 한다는 정책적 함의도 제시했다.

    흥미롭게도 이 '노벨상 이론'은 이미 우리 헌법에 새겨진 원리다. 1948년 제헌헌법 제5조는 국가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서 각인의 자유·평등·창의를 존중·보장하고, 공공복리 향상을 위해 이를 보호·조정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했다. 제5조는 이후 삭제됐지만, 현행 헌법 제119조에 남아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경제질서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창의'는 개인 재능의 보호를 넘어, 성과를 '공공복리의 향상'으로 연결시키는 국가 성장엔진을 뜻한다.

    그 뿌리는 1919년 3·1독립선언서에도 선명하다. 선언서는 우리의 "항구여일한 자유 발전"과 "풍부한 독창력 발휘"를 다짐했다. 초대 법제처장인 유진오는 1953년 저서에서 제헌헌법 제5조를 두고 "국가의 건전한 발달은 각인에게 가능한 최대한도의 자유를 부여하고 그의 권리와 창의를 존중하는 데서만 희구할 수 있음은 역사가 증명한 진리"라 적었다. 이는 노벨위원회 노벨상 이론의 설명과 놀라울 만큼 맞물린다. 대한민국은 태생부터 '창의 발전' 국가였다.

    수상자들도 한국의 경험을 주목했다. 아기옹은 외환위기 이후 비재벌 기업의 진입이 생산성 향상을 이끌었다는 근거를 제시했고, 모키어는 한국을 혁신 주도 성장의 모범으로 평가하며 초저출산 해결을 핵심 과제로 지목했다. 신기술을 재빨리 수용하는 '얼리 어답터' 기질은 한국 특유의 혁신 동력이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창의'의 저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문화·안보의 경계가 다시 그려지는 문명사적 전환기 앞에서, 이 원리는 더욱 절실하다. 경쟁과 개방, 실패로부터의 학습을 장려하고 혁신의 과실이 독점으로 굳지 않게 창의적 성과를 보호·조정하는 일은 제헌헌법이 국가에 부여한 책무다.

    우리는 구한말 문명 전환기 혁신에 뒤처져 국운이 기운 경험을 갖고 있다. 그 역사적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헌법에 새긴 '창의'는 단순한 경제 이론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조건이자, 문명 전환기를 헤쳐 나갈 나침반이다. 이제 '창의'의 원리를 국정의 최고 규범으로 되살려, 다가온 문명사적 전환을 선도해야 한다.

    [부경호 한국에너지공과대 에너지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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