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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항생제 내성 ‘슈퍼박테리아’ 진화의 추적 [강석기의 과학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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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항생제 사용이 세균의 내성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를 재구성하기 위해 항생제 시대 이전(PAE) 플라스미드 게놈 정보와 현대 시대 공공 아카이브의 플라스미드 게놈 정보를 비교했다. 그 결과 현대 플라스미드의 상당수가 PAE 플라스미드 골격에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더해진 형태로 드러났다. ‘사이언스’ 제공


    한겨레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지난 3일 질병관리청은 꽤 걱정스러운 자료를 내놓았다. 올해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 감염증 신고 건수가 이달 1일 기준 4만4930건으로 지난해 연간 신고 건수인 4만2347건을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신고 건수는 지난해보다 15%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소위 최후의 항생제로 불리는 카바페넴은 여러가지 세균 감염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 약물이다. 따라서 다른 계열의 항생제들에 이어 카바페넴까지 내성을 지닌, 소위 슈퍼세균에 감염되면 마땅한 항생제가 없다는 뜻으로 자칫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항생제 내성 문제는 이미 지구촌 규모의 위기로 연간 사망자가 500만명을 넘어섰고 머지않아 1천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10명에 2명은 슈퍼세균 감염으로 목숨을 잃을 거라는 말이다.



    항생제 내성은 1940년대 페니실린이 보급된 이래 많은 항생제가 개발되고 무분별하게 쓰인 결과다. 우리나라만 해도 항생제가 듣지 않는 바이러스 질병인 감기에도 습관적으로(이차감염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항생제를 처방해왔다. 그러나 이는 유력한 가설일 뿐 항생제 내성을 지니게 된 세균의 진화 과정을 명쾌히 보여주지는 못했다.



    지난주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지난 100년 동안 인체 감염균이 항생제 내성을 지니게 된 과정을 ‘발굴해낸’ 연구 결과가 실렸다. 영국 웰컴생어연구소가 주축이 된 공동연구자들은 영국 국립유형배양물컬렉션에 보관된 머리컬렉션에 주목했다. 캐나다 맥길대의 미생물학자인 에버릿 머리는 1917년에서 1954년까지 환자에게서 세균 시료를 모았는데, 그가 죽고 16년이 지난 1980년 역시 미생물학자인 아들이 시료를 국립유형배양물컬렉션에 기증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시료 368개의 세균 게놈을 해독해 플라스미드 765개를 찾았다. 플라스미드는 세균 염색체와 별도로 존재하는 원형 디엔에이(DNA)로 자체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플라스미드는 세균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데, 항생제에 죽는 세균이 내성 유전자를 지닌 플라스미드를 받으면 내성을 갖게 된다.



    분석 결과 머리컬렉션의 모든 플라스미드에는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없었다. 항생제가 나오기 전 또는 막 쓰기 시작하던 시기에 환자에게서 얻은 시료이므로 말이 된다. 연구자가 실수로 이들 세균에 감염돼 병에 걸리더라도 일반 항생제로 곧 나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1956년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해 80여 나라에서 채집한 병원균 시료에서 찾은 ‘현대 플라스미드’ 4만여개의 정보가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했고 9천여개가 머리컬렉션의 플라스미드의 후손으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절반이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는데, 한 플라스미드는 무려 40개를 갖고 있었다. 이런 플라스미드를 지니면 슈퍼세균이 된다. 플라스미드는 보통 세균의 대사 기능을 돕는 유전자나 경쟁자를 죽일 독성 인자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데, 항생제가 쓰이기 시작하면서 이를 분해하는 효소의 유전자를 포획한 것이다.



    100년도 안 되는 사이 플라스미드 진화를 통해 항생제 내성이 생긴 과정을 재구성한 이번 연구 결과는 세균의 적응 능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류가 나오기 수십억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아왔고 인류가 사라진 뒤에도 그만큼 더 살 존재들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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