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석 동남아본부 특파원 |
"한국 기업을 보면 가끔은 너무 이익만 따지는 것 같아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만난 한 당국 관계자가 사견임을 전제로 한국 기업에 대한 현지인들의 인식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이 협상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손해 볼 것 같으면 그 상황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실제 일부 대기업도 그렇다. 국내 대기업 중 한 곳은 수주·입찰 당시 사업 전 과정에 참여하겠다고 말하고는 세부 협상에서는 알짜 사업만 요구하는 행태를 보여 사업이 백지화되기도 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이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은 다르다"고 한다. 사업 수주 때 돈이 안 되더라도 인도네시아 정부가 요구하면 적극 나선다는 것이다. 트럼프발 관세폭탄으로 자국 내 공급망을 인근 국가로 이전시켜야 한다는 국가 방침이 서자, 손익계산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중국 기업들이 당장의 손해에도 수주·입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물론 이 뒤에는 막대한 중국 정부의 보조금과 지원금이 있다.
한국 제조업계에서 '엘도라도'로 여겨지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 값싼 노동력과 각종 인센티브를 이용해 대부분의 물량을 다시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자국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한다. 베트남은 최근 첨단기술법 개정에 나섰고, 인도네시아는 자국부품의무사용(TKDN)을 내세우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현지 진출 기업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두 나라는 향후 자국 산업 발전에 기여할 가능성을 외국 기업 대상 인센티브 지급 척도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억울한 노릇이다. 많은 현지 진출 대기업들이 법적 의무사항 이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현지 공급망과의 상생을 위해 기술이전과 현지 고급인력 양성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제조업 기반이 약한 현지 기업들이 자체 기준에 미달해 공급망에 편입시킬 수 없는 상황인데도 현지 당국은 공급망 편입과 인공지능(AI)·첨단반도체 등 생산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진국 함정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남아 국가들과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진출기업 사이에서 '동상이몽'이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 진출로 고성장을 해놓고 이젠 중진국 함정을 뛰어넘는 데까지 한국 기업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어, 일개 외국 기업이 어디까지 역할을 해야 하는지 답답한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rejune1112@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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