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18일 중국 베이징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일시위 참가자들이 마오쩌둥의 초상화와 반일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베이징/박민희 선임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온 사방에서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2012년 9월18일, 필자는 중국 베이징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어진 대규모 반일시위를 취재하고 있었다. 마오의 초상화나 ‘일본을 향해 발포하자’ ‘일본 ×들을 죽이자’ 같은 살벌한 펼침막을 든 시위대가 수백명씩 조를 나눠 행진했다. 중국 곳곳에서 일본산 자동차를 부수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일본과 한번 전쟁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사태의 도화선은 2010년 9월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근처 해역에서 벌어진 중국 어선과 일본해상보안청 순시선의 충돌이었다. 체포된 중국 선장을 일본이 기소하려 하자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꺼내 들었고 일본은 중국 선장을 석방하며 ‘굴복’했다. 하지만 이 갈등은 2012년 일본이 센카쿠열도를 국유화하려 하면서 다시 격렬하게 폭발했다. 중일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중-일 센카쿠 충돌과 동일본 대지진의 혼란이 맞물리면서 일본에서 민주당 정권이 무너지고 아베 신조가 다시 총리가 됐다. 아베 총리는 중국과의 긴 대결을 염두에 두고 미국과 더 밀착하며 재무장의 길로 질주했다. 2015년 신안보법을 통과시켜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미국 등 밀접한 관계의 국가가 무력공격을 받아 일본의 ‘존립 위기’로 판단하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 군사행동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지난 11월7일 ‘아베의 후계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을 도화선 삼아 중국과 일본이 다시 충돌한 것은 2010~2012년 ‘센카쿠 충돌’에서 시작된 거대한 지각 변동의 연속선 위에 있다.
초기에 이 사태의 불길이 커진 것은 중국 지도부가 다카이치의 발언을 시진핑 주석에 대한 직접적 모욕이자 도발로 여겼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10월31일 경주에서 다카이치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지 일주일 만에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 중의원 질의에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거나 봉쇄할 경우 일본의 존립위기로 판단해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시 주석에게 다카이치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권유했던 중국 외교 책임자들은 ‘오판’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일본 때리기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 2012년에 민간의 반일 시위와 공격이 전면에 있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중국 외교부, 국방부를 비롯해 당과 정부가 직접 나섰다. 출구를 찾기도 훨씬 어려워졌다.
사건이 전개될수록 중국 당국은 이번 사태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동맹을 무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활용해 미국과 일본의 사이를 얼마나 갈라놓을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중-일 갈등이 시작된 직후 트럼프는 “우리의 많은 동맹이 곧 친구인 것은 아니다. 동맹은 무역에서 중국보다 더 많이 우리를 이용해 왔다”며 오히려 일본을 탓했다. 이어서 시진핑 주석과의 통화에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자세히 들은 뒤 다카이치 총리와 통화해 “대만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중-일 충돌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처음부터 명확하게 일본 편에 섰고, 2014년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센카쿠 열도가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을 받는다고 확약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동아시아를 중국의 ‘세력권’으로 인정하는 듯한 신호를 거듭 발신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쪽으로 기울어진 태도를 보이자, 일본은 흔들린다.
중국이 지난 80년 동안 미국이 아시아에서 유지해온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흔드는 전략적 ‘역사전쟁’을 벌이는 부분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1951년 9월8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 48개국과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했고, 패전국 일본은 이를 통해 주권을 회복했다. 이 조약에서 ‘일본은 대만과 펑후제도에 대한 일체의 권리와 소유권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했지만, 대만이 어디에 귀속되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중국은 독일, 이탈리아와의 강화는 연합국이 공동으로 맺기로 1942년에 약속했지만,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중국은 배제되었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한다. 다카이치 총리가 11월26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일본은 이미 대만과 관련한 모든 권리와 권한을 포기했다”고 하자, 다음날 중국 외교부의 궈자쿤 대변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중·러 등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승국들을 배제한 채 일본과 단독으로 체결된 문서로, 대만의 주권 귀속 문제를 규정한 부분은 불법이며 무효”라고 맞받았다. 중국은 대신 ‘대만을 중국에 귀속시킨다’고 명확히 밝힌 카이로선언(1943년)과 포츠담선언(1945년)의 역사적 정당성을 강조한다. 중국은 ‘역사전쟁’과 외교 전략을 긴밀하게 연결하면서 국제사회가 중국의 주장을 수용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중국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무효론’은 우선 대만에 대한 중국의 권리를 강조하고, 일본이 ‘2차대전 패전국’임을 부각하며 압박하고, 장기적으로는 아시아에서 중국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중국에서는 ‘존립 위기’(존망 위기)를 침략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일본 군국주의의 상투적 수법이라면서 다카이치 정부를 1930년대 일본 군국주의와 연결하는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양바오장 중국사회과학원 일본연구소장은 11월26일 위챗에 쓴 글에서 “다카이치가 국가 존망의 위기를 주장하면서 침략을 정당화했던 전전 일본의 군국주의를 부활시키고 아베의 2015년 신안보법을 무기화하려 한다”면서 “다카이치는 일본 군국주의의 새 대표자이며 극우 보수주의와 역사수정주의를 혼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국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일본을 향해 “불장난하는 자는 결국 자신이 타 죽는다” “사마귀가 수레를 막으려 하고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중국의 강경한 공세에 깔린 것은 ‘쇠퇴하고 있는 일본’이 발버둥 치지만, 중국의 압도적 힘 앞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2012년 충돌 당시 중국과 일본의 경제력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의 4.6배이고 군사력 격차는 훨씬 크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미국이 대만 문제에 개입하기를 주저하고, 동맹의 편에 서지도 않는다. 중국은 일본을 굴복시키고 아시아의 패권을 확고히 할 역사의 순간이 왔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청의 이홍장이 1895년 3월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기 위해 일본 이토 히로부미와 담판하는 모습을 그린 삽화. 한겨레 자료사진 |
여기서 소환되는 것은 청일전쟁(1894~1895)의 역사다.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로 대만과 센카쿠 열도를 장악했다. 조선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갈림길로 들어섰다. 청을 중심으로 한 조공질서는 무너졌고 아시아의 패권은 중국이 아닌 일본으로 넘어갔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실현된다면 아시아는 청일전쟁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중국의 논리다.
인민해방군이 11월24일 서해의 류궁다오 동부 수역에서 실탄사격 훈련을 한 것은 상징적이다. 청일전쟁 당시 1895년 2월 일본 해군은 청의 북양함대를 대파하고 류궁다오에 상륙해 군사시설을 접수했다. 강경 민족주의 성향인 천핑 푸단대학교 선임연구원은 11월13일 ‘시나뉴스’에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대만 문제에 간섭한다면, 중국은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주요 기지들을 포함한 상징적 목표물을 타격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일본 자위대가 중국의 대만 통일 과정에 간섭하거나 대만해협에서 충돌을 일으킨다면, 일본 해군 함대는 완전히 섬멸될 것이며, 류큐(오키나와) 제도에 있는 일본의 해군 및 공군 기지들은 파괴될 것이다. 이것은 청일전쟁의 역사적 빚을 청산하는 조치가 될 것이다.”
중국 관영언론과 전문가들이 잇따라 ‘류큐(오키나와) 문제’를 들고나오는 것도 오키나와가 청의 조공국이던 시대의 역사를 환기하는 것이다. ‘오키나와가 역사적으로 일본의 일부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일본을 압박하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제1도련선’의 핵심인 오키나와를 흔들려 한다. 진찬룽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석좌교수는 11월18일 위챗 ‘진진러다오’ 계정에서 “중국은 외교·경제·군사적 신호를 종합적으로 구사하고, ‘류큐 지위 미정론’을 활용해 일본 우익의 재군국화를 억제하며 동시에 미국의 실질적 지원 한계를 시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일 모두 물러서기 어려운 갈등의 장기화 속에서 중국은 아시아 질서 재편을 목표로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서반구’로 후퇴하겠다고 공언했고 중국은 역사적 세력권을 복원하려 한다. 강대국들이 담판을 통해 각자의 ‘세력권’을 나누는 열강의 시대가 돌아오고 있다. 일본도 군비 증강의 속도를 계속 높여갈 것이다. 중-일 갈등이 정치, 경제, 문화를 넘어 군사 분야까지 확대되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충돌의 위험도 커져간다. 한국의 외교·안보에도 점점 더 큰 압박이 될 것이다. 청일전쟁으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한반도였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끝나지 않은 심판] 내란오적, 최악의 빌런 뽑기 ▶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