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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0 (수)

    [기고]닥터나우 의약품 도매업 진출, 왜 규제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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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업 진출을 제한하는 법안을 둘러싸고 논쟁이 거세다. 플랫폼 기술로 소비자의 거래비용을 낮추고 편익을 높이는 혁신산업 육성은 중요하다. 기존 면허 직역의 보호 논리와 신성장 육성이라는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정책 결정자의 숙명일 것이다.

    그러나 보건의료는 일반 산업과 다르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에 공공성이 우선시되는 영역이다. 따라서 단순히 미래 기술 진전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되며,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영국 ‘바빌론 헬스(Babylon Health)’의 실패와 한국 ‘쿠팡’이 보여준 독점적 폐해를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두 사례는 의료서비스가 영리 플랫폼의 시장 논리에 종속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바빌론 헬스는 2023년 결국 파산했다. 바빌론은 비교적 건강한 20~30대 젊은층을 집중적으로 유치해 국가보건서비스(NHS)의 1인당 재정 확보 전략을 활용했다. 반면, 치료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노인이나 만성질환자는 사실상 지역 공공병원이 떠안게 되었다. 공공의료기관의 재정 악화와 의료체계 불균형이 가속화된 것은 ‘단물 빨기(Cream Skimming)’ 전략의 전형적 결과였다.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영리 플랫폼은 수익성이 없는 공공 서비스를 외면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환자만 선별해 의료체계를 왜곡시킨다. 경쟁은 혁신이 아닌 ‘건강한 환자 쟁탈전’으로 변질될 뿐이다.

    최근 연일 논란이 되는 쿠팡 역시 시장지배력 확대 과정에서 납품업체에 대한 가격 압박, 종속적 거래구조 등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모든 플랫폼 기업이 동일한 행태를 보인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의약품 도매업까지 겸하게 되면 제약사와의 이해상충과 정보독점을 통한 구매 압박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타다금지법은 국민에게 위해가 없지만,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업 제한 입법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봐야 한다.

    실제로 닥터나우는 ‘탈모약 1년치 처방 가능’과 같은 오남용 우려 광고로 지적받았고, 특정 제약사와의 제휴 의혹이나 일정 금액 이상 판매한 약국에 ‘재고 있음’ 표시 혜택을 제공했다는 논란도 있었다. 병원과 약국이 의약품 도매업을 겸업할 수 없도록 한 제도는 이해상충과 불공정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장치다.

    코로나19 이후 의약품 부족은 약국의 상시적 문제가 되었고, 환자들이 약을 찾아 여러 약국을 전전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비대면 플랫폼들은 약국 재고 조회 기능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조회 가능한 품목은 전체 2만여종의 의약품 중 100여종에도 못 미친다. 시스템적 한계로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약국의 재고정보 제공과 의약품 품절 문제는 결국 국가 차원의 인프라로 해결해야 한다. 이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관리종합정보센터(KPIS)가 존재하며, 제약사와 도매상은 전문의약품 입고, 출하 내역을 다음날까지 의무 보고하고 있다. 또한 의료기관과 약국이 의약품 사용 내역을 KPIS에 보고하도록 한다면, 국가 차원의 정확하고 시의성 있는 재고정보 제공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기술은 의료서비스의 질과 안전을 높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논쟁은 특정 직역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의료가 플랫폼 기업의 시장지배력과 이해상충 구조에 종속될 때 발생할 위험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공공성 논의다. 바빌론의 실패와 한국 쿠팡의 독점 논란이 의료 분야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경향신문

    김동숙 국립공주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김동숙 국립공주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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