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희 사회부 차장 |
그는 과거 두 차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미성년자를 꼬드겨 성폭행하거나 강제추행한 전력이 있었다. 교도소에서 풀려난 그가 다시 ‘사냥 도구’로 집어 든 것은 스마트폰, 그중에서도 카카오톡 오픈채팅이었다. 표모 씨(26)는 국민 메신저의 익명 채팅 기능을 이용해 여중생을 유인했고, 결국 3일 경남 창원시 모텔에서 두 학생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단순히 아동 성범죄자의 반복된 일탈로만 치부해선 곤란하다. 표 씨 같은 이가 아무 제약 없이 10대에게 말을 걸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국회와 정부가 아동 보호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입증한다. 지금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여중생’을 검색하면 낯 뜨거운 사진과 제목을 건 대화방 수십 개가 나타나는데, 아무나 익명으로 입장할 수 있다. 지난해 정부 조사에서도 미성년자 성착취의 42%가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시작됐고, 39%는 SNS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였다면 아이의 안전을 방치한 플랫폼 기업은 생존을 걱정해야 했을 것이다. 영국은 지난해 ‘온라인 안전법’을 제정해 성인과 아동이 익명으로 접촉할 수 있는 기능 자체를 위험 요소로 규정했다. 성착취를 막을 안전장치를 두지 않는 등 법을 어기면 경영진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미국 상원이 통과시킨 ‘아동 온라인 안전법’에서도 낯선 성인과의 소통을 차단하는 건 플랫폼의 의무다. 경영진을 감옥에 보내서라도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의지다.
반면 한국 정부와 국회는 아이들의 안전보다 플랫폼의 돈벌이를 지키는 데 더 관심이 있다. 2020년 ‘n번방’ 사건 이후 랜덤채팅 앱 규제는 강화했지만, 정작 전 국민이 쓰는 카카오톡의 오픈채팅은 ‘본인 인증을 거친다’는 이유로 규제망을 빠져나갔다. 지난 국회에서 플랫폼 책임을 강화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지만 “과도한 규제가 국내 플랫폼의 글로벌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업계 이익단체의 반발에 밀려 줄줄이 폐기됐다.
카카오는 부모가 요청하면 자녀의 오픈채팅을 차단해 준다고 홍보한다. 이거론 부족하다. 학교 과제나 동아리 활동을 한다며 가입한 뒤, 성인 남성과 은밀한 채팅방으로 빠질 구멍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아예 미성년자 계정의 ‘1 대 1 오픈채팅’ 기능을 막아야 한다. 정체도 모르는 성인과 미성년자가 밀실에서 대화해야 할 이유가 뭔가. 학급 공지는 그룹 채팅(단톡방)으로 충분하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선 ‘맞팔’ 관계가 아닌 성인이 미성년자에게 쪽지(DM)를 보낼 수 없게 막아야 한다. 이미 미국과 영국이 이렇게 한다. 모르는 어른이 길 가는 아이를 붙잡고 귓속말하면 경찰이 출동하는데, 온라인에서는 왜 범죄자가 아이의 주머니에 불쑥 쪽지를 넣어도 방치하는가.
성범죄자에게 익명 접속권을 쥐여준 건 플랫폼이지만, 이를 방치한 책임은 플랫폼의 로비에 넘어간 국회와 정부에 있다. 한 해에만 960명의 아동이 채팅 앱과 SNS에서 성착취를 당한다는 정부 통계가 버젓이 있는데 이를 두고만 보는 게 과연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인가. 플랫폼의 ‘글로벌 경쟁력’ 운운에 놀아나는 사이, 또 다른 표 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오픈채팅 검색창에 “심심한 중딩”을 입력하고 있다.
조건희 사회부 차장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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