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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0 (수)

    [안보윤의어느날] 이토록 친밀한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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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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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유기견 구조 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몇 개 보았다. 눈매가 순하고 코가 새까만 강아지 얼굴이 화면에 뜨기에 무심코 눌렀더니 이후부터 알고리즘을 타고 온갖 동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공장 자재 창고 구석에 새끼를 낳은 고양이나 지난여름 부산에서 실종된 허리와 다리가 기름한 강아지 영상 같은 것이 화면을 채웠다. 잔디밭에 앉아 있는 한 살 남짓한 아기를 독수리가 채가려는 순간 맹렬히 달려들어 아기를 지키는 고양이라든가 함께 산책하다 돌연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한 개 덕분에 보도블록을 덮친 트럭으로부터 목숨을 지킨 견주 영상도 뒤따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기이하게 느껴지는 패턴의 영상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영상은 대체로 숲속에 위치한 해외의 어느 주택에서 시작됐다. 양쪽 귀를 한껏 뒤로 젖힌 북극여우나 서글프게 우는 작은 몸집의 늑대가 주로 나왔다. 이들은 눈 쌓인 마당을 서성이거나 유리문을 다급히 긁어 사람을 불러냈다. 목소리로 등장할 뿐인(무슨 일이니?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 거야?) 사람이 여우 뒤를 따라 폭설로 뒤덮인 숲으로 들어가고, 어느 한 곳에 다다른 여우가 앞발로 눈을 파 내려가기 시작한다. 움푹 파인 눈구덩이에는 연분홍색 코를 가진 새끼 여우가 세 마리쯤 파묻혀 있다. 새끼들을 구해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벽난로 앞에 부드러운 담요를 깔고 여우 가족을 돌봐주는 장면을 끝으로 영상은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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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다른 버전은 곰이나 치타처럼 크고 날렵한 야생동물의 것인데, 이들은 대개 덫에 걸렸거나 하이에나에게 다리나 옆구리를 뜯긴 새끼를 물고 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다.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앙증맞은 깁스를 한 새끼를 돌봐주는 영상 뒤에는 틀림없이 이런 장면이 이어진다. 곰 가족이 새끼를 데리고 도와준 사람에게 인사를 하러 찾아오거나 보답처럼 작은 동물을 물어다 놓는 장면 말이다. 영상 속 동물들은 어여쁘고 무해하며 반드시 은혜를 갚으러 돌아온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기이하게만 느껴졌다. 작고 연약한 동물이 눈에 파묻히거나 포식자에게 공격당하고, 그걸 어떻게든 사람이 구해내고, 도움을 청했던 동물 가족이 감사 인사를 하러 돌아온다는 이상한 패턴이 말이다. 동물의 종류만 바꿔 끊임없이 같은 영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마음이 대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영상 속 사람은 사파리 투어 도중 하이에나 무리에게 공격당하는 호랑이에게서 새끼를 건네받기도 하고 상어에게 공격당하는 북극곰 새끼나 바다사자를 보트 위로 끌어 올리기도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제 괜찮다고, 내가 널 지켜주겠다고 말한다. 동물들은 사람에게 꽉 안긴 채 애처롭게 삐약거릴 뿐이다.

    무분별한 개발로 동물들의 터전을 빼앗고 손쉽게 동물을 죽이고 기후위기를 초래한 당사자이면서 인공지능(AI)으로 만들어 공유하는 영상은 자애로운 인간의 영웅놀이에 가깝다. 동물들에게 있어 이토록 친밀한 악인이 또 있을까. 지치지도 않고 이어지는 영상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화면 속에는 눈표범 한 마리가 옆구리에 작은 화살이 박힌 새끼를 입에 문 채 다급히 사람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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