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고’, 아니 ‘서고연’만 업적이 있는 건 아니다. 한양대는 공대 교육과정 표준을 만들었다. 이대는 여성 고등교육을 대중화했다. 성균관대는 오래 살아남았다. 어린 시절에는 거기 가려면 장원급제라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내 모교도 업적이 있다.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다.
다른 대학에 비하면 하찮은 업적 아니냐고? 아니다. 한국어는 맞춤법이 까다로운 언어 중 하나다. 문제는 띄어쓰기다. 다른 언어도 띄어쓰기는 있다. 한국어처럼 정신 사납지는 않다. 한국어는 규칙보다 예외가 너무 많다. 권혁철 교수가 만든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는 한국어 띄어쓰기 판단을 프로그램으로 처음 구현했다. 내 모교는 띄어쓰기 지옥에서 한국인을 구했다.
문제가 있다.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는 사용자가 많아 자주 작동을 멈춘다. 당장 마감한 글을 보내야 할 때는 난감하다. 어쩌면 우리는 띄어쓰기를 재정비해야 할 시기를 맞은 것일지 모른다. 이제 우리 글의 1차 독자는 사람이 아니다. 검색엔진과 알고리즘이다. 띄어쓰기가 불안정한 글은 디지털 인프라에서 탈락할 가능성도 높다. 정보량이 힘인 시대에는 큰 약점이다.
다붙여버리는것이정답일수도있다. 여러분도이문단을읽는게딱히어렵지는않을것이다. 한국어띄어쓰기는글읽는리듬이아니라문법단위로정해지기때문이다. 그게힘들다면부산대서버증설을위한국가적투자가필요하다. 부산대맞춤법검사기는학교업적이아니라국가기반시설이니편향된요구는아니다. 학벌주의에반대하며학력을기재하지않는분들은이글이좀거슬릴것이니미리사과드린다. 기재하지않아도알사람은다알지만어쨌든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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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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