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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추억 소환 여행] 구불구불 44번 옛길 따라…늦가을 속초 추억 소환여행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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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온 천지 붉게 물든 만추홍엽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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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라 쓰고 사무침이라 읽는 추억은 다들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을까. 아침 안개 피어오르듯 머릿속에 기록된 뿌연 무언가는 얼굴 하나, 이름 하나다. 찬바람이 불어올수록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일은 잦아진다. 마음이 허한 느낌이 들어서일 테다. 이럴 때 단출히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좋은 특효약은 없다. 떠나는 준비부터 교통수단, 음식, 나아가 서로 모든 것을 함께한 순간 하나하나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간다. 설사 혼자 여행을 했더라도 '누구'는 없을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분명 남아 있을 터. 그래서 사람은 참 묘하다. 기억을 다 잊은 듯하면서도 불현듯 당시 옷이나 분위기, 냄새 등을 접하면 스멀스멀 기억을 떠올리니 말이다.

추억을 소환하는 여행에 제격인 곳이 있다. 강원도 속초다. 속초는 가는 길부터 추억 쌓기에 최적이다. 지금이야 쭉쭉 뻗은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3시간도 안 돼 갈 수 있지만 예전에는 한계령 방향의 44번 국도나 미시령 쪽의 46번 국도를 꾸불꾸불 따라 가야 했다. 워낙 길이 험하다 보니 온몸이 경직되기 일쑤. 그래서 가다 서다를 수없이 반복해야 다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힘듦도 잠시. 사시사철 바뀌는 설악산의 절경은 한순간도 지겹지 않고, 오히려 꾸불꾸불 오르락내리락 길은 운전하는 재미마저 쏠쏠하게 느껴졌다. 요즘도 옛길만의 매력을 느끼려 이 길을 찾는 이가 꽤 있을 정도다.

100원짜리 동전 2개가 주는 행복

가끔이지만 그 고장의 이름은 왜 지어졌을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속초의 유래는 꽤 흥미롭다. 속초는 속초 특유의 지형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 속초 땅은 마치 소가 누워 있는 듯한 모양이다. 그렇다 보니 너른 들판을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야 하는 소가 풀을 편히 먹기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부터 풀을 뜯어서 소가 편히 풀을 뜯게끔 만들었고, 속초란 이름은 이후 풀(草)을 묶는다(束)는 의미로 붙여졌다. 이런 유래를 좀 더 드러내기 위해 속초 중앙시장에 가면 입구 쪽에 튼튼해 보이는 황소상이 딱 서 있다. 속초의 무한 발전을 기원하면서 세웠다.

속초에 갈 때 꼭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요새 대부분 신용카드나 지폐만 들고 가는 경우 많지만 속초에 갈 때는 반드시 1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가져가야 한다. 속초에 명물인 '이곳'에 들르기 위해서는 동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함경도 출신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아바이마을이 그곳이다.

물론 아바이마을을 동전이 없다고 해서 못 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대로 속초를 즐기고 싶다면 동전을 챙겨두란 얘기다. 그 이유는 아바이마을까지 가는 갯배를 타기 위해서다. 이 갯배를 타지 않고 빙 둘러 다리를 이용해도 갈 수 있지만 단돈 200원만 내면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갯배의 승선요금은 1인당 200원. 편도요금이 그렇다. 4인 가족이라 해도 1000원이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갯배를 탈 수 있다. 갯배를 속초의 명물로 꼽는 이유는 단지 저렴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갯배는 가로 15m, 세로 20m쯤 되는 직사각형 모양의 배다. 이 배가 동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움직인다. 한쪽에서 다른 한쪽까지 연결된 쇠줄에 고리를 걸고 잡아당겨 건너는 방식이다. 그래서 슬금슬금 고리를 당기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전진한다. 그렇게 5분 정도 당기면 목적지인 아바이마을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줄을 당기는 것이 또 흥미롭다. 우선 갯배의 선장(?)이 할아버지다. 그분이 줄을 당기는 모습을 보면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안 생길 수 없다. 남녀노소 불문 누구나 도울 수 있다는 얘기다. 아니, 아예 승선한 승객끼리 줄을 당겨 움직일 수 있다. 선착장 입구에 '갯배 쇠줄 당기는 법'이 적혀져 있을 정도다. 줄을 당기며 갯배를 타는 재미는 기대 이상으로 꽤 쏠쏠하다. 아바이마을을 가기 위한 갯배는 속초 중앙시장에 닭강정이랑 순대 파는 거리 바로 앞에 있으니 꼭 타보시길.

오징어순대부터 해전물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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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단 돈 200원에 타는 갯배
② 청정 동해의 기운 물씬 풍기는 속초 해변
③ 구수하면서 매콤한 아바이마을 오징어순대


'아바이'란 단어는 아버지를 뜻한다. 함경도 사투리다. 한국전쟁 때 부산 지역으로 피난 내려 온 피난민들이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되면서 지금의 청호동, 그러니까 아바이마을에 터를 잡았다. 아바이마을에 가면 마을 초기 사진부터 마을 역사에 대한 내용들이 전시돼 있는 곳이 있다. 또 마을을 둘러보다 보면 마을 곳곳에 그려진 벽화가 있는데 나름 벽화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보다 생생하게 느끼려면 문화관광해설사가 설명하는 기회를 잡으면 된다.

아바이마을에 가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아바이마을을 대표하는 음식인 순대를 맛봐야 한다. 일반 순대는 돼지 창자를 이용하기 마련. 물론 아바이순대도 돼지를 사용하지만 아바이순대와 함께 꼭 오징어순대를 맛보길 추천한다. 촉촉하고 쫄깃쫄깃한 식감의 오징어가 아주 감칠맛 난다. 겉피 안에 들어가는 소도 찹쌀과 숙주, 배추, 고추 등을 다져 넣은 후에 달걀과 버무려 특별하다. 푸짐한 오징어순대를 한입 베어 물면 구수하면서도 매콤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맛이 정말 끝내준다.

아바이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갯배를 타고 나오면 속초 중앙시장이 보인다. 속초 관광 수산시장이라고도 부르는 이 시장을 그냥 지나치면 속초 여행을 다녀갔다 할 수 없다. 이곳에 바로 빼놓을 수 없는 명물 음식들이 즐비하다.

우선 속초 하면 떠오르는 음식인 닭강정이 바로 이 시장 안에 있다. 닭강정은 보통 맛, 매콤한 맛 등으로 나뉜다. 1상자에 닭 1마리가 강정으로 만들어져 있어 양에서 압도당한다. 욕심 같아서는 다 맛보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하기에 부담이 있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현지에서 바로 먹을 때는 보통 맛을 선택하면 된다. 바삭함은 물론이고, 닭 누린내가 전혀 없이 고소함만 가득 느낄 수 있다. 대신 포장을 해서 싸갈 경우에는 달라진다. 매콤한 양념맛으로 가져가는 게 좋다. 흔히 식으면 눅눅해져서 맛이 없는 게 일반적이지만 속초 닭강정은 식은 닭강정이 진짜 닭강정이다 할 정도로 아주 맛나다.

닭강정에 버금가는 속초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음식은 물회다. 새콤달콤한 육수에 동해에서 나는 다양한 종류의 해산물을 가득 넣어 만든 물회. 속초여행에서 절대적으로 필수 흡입해야 하는 음식이다. 속초 물회는 전국에서도 손꼽힐 만큼 유명하다. 그 이유가 해전물회이기 때문. 해전물회는 해삼과 전복이 들어간 물회를 일컫는데, 해삼과 전복 특유의 싱그러움, 바다내음, 그리고 쫄깃쫄깃, 꼬들꼬들한 식감이 입맛을 돋운다.

여행의 마무리 '뜨끈뜨끈 온천'

기분 전환이나 휴식을 위한 여행이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떠나기 전 피로를 확 풀 수 있는 곳이 속초에 있다. 뜨끈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글 수 있는 노학동 척산온천지구가 그 것. 흔히 설악산은 한계령과 미시령을 경계에 두고 동해 쪽을 외설악이라 부른다. 속초가 바로 외설악에 자리한다. 노학동 척산온천지구는 설악동에서 학사평과 미시령에 이르는 길목에 있다. 이곳 온천의 특징은 무미 무취. 아무 맛도 향기도 나지 않는 대신에 물빛이 약간 푸른빛을 띠는 것이 색다르다. 불소와 방사성물질인 라듐 등이 함유돼 있어 피부병이나 눈병, 위장병, 신경통 등에 좋다. 충치를 비롯한 치아 관련 질환 예방과 치료에도 효과가 있으니 여독을 풀기에 그만이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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