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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기미야 타다시 "한일 양국, 강제징용 배상 판결 악영향 줄일 지혜 모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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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도쿄대 기미야 타다시(木宮正史·58, 사진) 교수는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본 내에 한국은 반일(反日)국가라는 인식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기미야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1965년 한일 기본합의 정신에 부합해서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혜를 신속히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53년 전에 맺은 한일 기본 합의에 대해선 "지금에 와서 협상을 더 잘했어야 한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당시의 한국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의 판결을 어떻게 보나.

"일본 사법부는 정부의 결정을 존중하는 사법 소극주의(消極主義)에 기반하고 있다. 정부의 행위를 통치행위로 인정하고 존중해준다. 그러나 한국은 사법 적극주의(積極主義 )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사법부가 양국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한다고 본다."

-일본은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나.

"한국인은 이번 판결이 대일(對日) 관계의 일부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양국관계의 근본이 흔들리고, 전부(全部)가 걸린 심각한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위안부 문제와 비교할 때 얼마나 심각한가.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뒤집는 것에 대해선 그래도 한국의 입장을 이해할만한 여지가 있다고 보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1965년 체제’ 부정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것은 한일관계의 기반을 뒤엎는 것이다."

-그래도 아베 내각이 한국 정부 입장이 나오기 전에 강하게 반발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양국관계의 기초가 흔들리는 문제에 대해 확실히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본다. 최근 일본 해상 자위대의 욱일기(旭日旗) 문제도 제기된 상태에서 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한 것 같다."

-일본 사회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강제징용으로 고통받은 한국인들을 한 번쯤 이해하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 보면 만족스럽지 못하겠지만, 일본정부는 1965년 이후 여러 기회를 통해 그분들에게 사죄했다고 보고 있다. 또 한국정부에 청구권 명목으로 보상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여야(與野)는 일제히 대법원의 판단을 환영하는 논평을 냈는데.

"한국 내에는 과거 양국간 국력 차이가 커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 지금이야말로 할 말은 해야 할 때라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일본도 마찬가지다. 과거는 식민지 문제도 있고 해서 관대하게 대응했지만 이젠 적당히 타협하자는 여론이 줄어들고 있다."

-이번 사태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을 보나.

"위안부 합의의 사실상 파기 후, ‘한국은 좀 이상한 나라’라는 인식이 퍼지는 와중에 이런 일이 터졌다. 한국과의 협력은 위험성이 크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혐한론이 다시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은.

"그것보다도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과 거래하면 결국은 배신당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 이미지가 추락하면 한국기업과 일본에 취업하려는 이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기미야 교수는 위안부 합의 사실상 파기, 해상 자위대 욱일기 시비에 이어서 한일 기본 합의 부정으로 악화되는 한·일 관계를 권투에 비유했다. 일본에서의 한국 이미지 악화는 갑자기 충격적인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좋지 않은 감정이 자꾸 쌓여서 권투의 ‘보디 블로우(body blow·복부를 강하게 때리는 것)’와 같이 한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65년 한일 기본합의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박 전 대통령이 결단을 내린 한일 기본 합의는 100점 만점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두 가지를 전제로 인정할만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일한관계는 현격한 국력 차이가 있었다. 또, 당시 일본사회에는 식민지에 대해서 잘못됐다고 하는 사람이 아주 소수였다. 그런 상황에서는 괜찮은 결과를 한국이 얻어냈다."

-한국 정부에 조언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외교상황을 보면 대북 문제로 미국과 삐걱거리고 있다. 중국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한국에 중요한 나라와 모두 관계가 좋지 않으면 자칫 한국은 고립될 수 있다."

- 일본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일본도 북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중재 역할을 해 줄 한국이 필요하다. 상호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좋지 않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국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기미야 교수는 1980년대 한국에 유학했으며 30년 이상 한일관계에 대해 연구해왔다. 도쿄대 한국학연구센터장을 역임했다. 일본 정부의 대한(對韓) 정책에 대해 자주 조언하고 있다. ‘한국-민주화와 경제발전의 다이나미즘’, ‘내셔널리즘에서 본 한국과 북한의 근현대사’ 등의 저작이 있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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