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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앵커브리핑] '소소 (小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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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맘처럼 풀리지 않는 팍팍한 세상사 때문일까.

사람들이 원하는 삶의 방식은 점차 소소한 즐거움과 스스로를 향한 위안으로 바뀌어 가고 있지요.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

- 무라카미 하루키 < 랑걸한스섬의 오후 >

하루키의 책에 등장한 이후 이제는 삶의 한 양식처럼 돼버린 소확행.

단어의 맨바닥에는 감출 수 없는 체념과 절망의 마음이 숨어있다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개인의 소소한 일상 또한 담겨있습니다.

다소 엉뚱한 유행어도 생겼습니다.

소확행이 아닌 소확'횡'

개인 자료를 회사 프린터로 인쇄하거나, 지우개나 볼펜 몇 자루를 슬쩍 집어오는 등 회사의 자원을 소소하게, 말 그대로 슬쩍하는 직장인의 작은 일탈을 의미한다는데.

엄격한 잣대로 보자면 비난받을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죄가 되지는 않는 애매하고도 소소한 횡령이라고나 할까…

소소위.

풀어쓰자면 그곳의 명칭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위원회'의 '소위원회'

법적인 근거도 뚜렷하지 않고 기록조차 남지 않는 그 작은 방에서는 지난 며칠간 수억, 수천억, 수조원의 거래가 진행됐습니다.

새벽길을 달린 6411번 시내버스의 승객들이, 갑질의 횡포를 감내하며 가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모으고 모아서 낸 세금은 그렇게 거래하듯 나누어졌습니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새벽 5시 반까지 출근하는 강남 빌딩의 청소 아주머니들…"

-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진통 끝에 예산안은 내일 통과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거대 여야당들의 이해가 어우러진 합작의 결과물이라니…

그래서인지 작은 야당에서는 바로 그 소소위 안에서 벌어진 예산 거래의 백태를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으름장마저 나온 오늘…

소확행. 그리고 소확횡.

그 안에 담긴 '소소' 함의 사전적 풀이는 '대수롭지 않고 자질구레하다'라는 의미라는데.

그동안 소소위에서 그들이 행한 것은 소소한 행복도 아니고 소소한 횡령도 아닌 그들만의 커다란 행복…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손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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