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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디지털스토리] 폐허 딛고 일궈낸 국민소득 3만달러…'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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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인당 GNI 3만1천달러 예상…50여년 전보다 300배 증가

한강의 기적 후 찾아온 외환위기·글로벌 금융위기 파고 넘어

빚더미 자영업자, 높은 청년실업, 빈곤에 자살까지

성장 속도보단 질 개선 필요…"새로운 인식의 틀 필요"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최유진 인턴 기자 = 올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1977년 모나코가 달성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스위스가 1988년 처음으로 '3만달러'의 문을 열어젖힌 후 30개국이 뒤따랐던 길이다. 경제적 의미에서 한국도 이제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유엔의 원조를 받던 세계 최빈국이 압축성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더니 마침내 세계 주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부존자원이 부족했지만 풍부하고 우수한 노동력 덕택에 '큰일'을 이뤄낼 수 있었다.

3만달러 대열에 합류했지만 어둠의 장막은 여전히 드리워져 있다. 3만달러의 온기가 국민 전체에 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영업자는 대출과 씨름하고 있고, 청년들은 취업난에 시달린다. 가난에서 비롯한 자살률도 높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들은 이제 우리의 기술력을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감소로 우수한 노동력 확보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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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 3만달러 돌파 확실시

9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올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모두 3만달러(약 3천336만원)를 돌파할 것이 확실시된다. 한국은행 등은 올해 성장률을 고려할 때 이 지표들이 3만1천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2019년 및 중기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1인당 GDP는 작년 대비 7% 내외 증가한 3만1천862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작년 1인당 GNI는 2만9천745달러, 1인당 GDP는 2만9천744달러였다.

GNI는 한나라의 국민이 생산 활동에 참여하고 대가로 받은 소득의 합계를 의미하고, GDP는 한 나라 안에서 각 경제주체가 생산 활동에 참여해 창출한 부가가치 또는 최종생산물의 시장 가격을 합한 것이다. 한 나라 국민의 소득을 보여주는 지표는 통상 1인당 GNI를 사용하지만 1인당 GDP도 수치상으로 큰 차이가 없어 자주 활용된다.

작년을 기준으로 1인당 GNI가 3만달러를 넘는 나라는 36개 OECD 회원국 중 23개국뿐이다. 그러나 한 번 소득 3만달러를 달성했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1인당 GNI가 늘 우상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2007년 3만 달러를 달성한 후 2012년 2만달러대로 추락했다. 그리스도 2008년 한해에만 '반짝' 3만달러를 기록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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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으로부터의 '위대한 탈출'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위대한 탈출'의 저자인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노벨상을 받은 이듬해 국내의 한 세미나에 참석해 "한국은 빈곤으로부터 '위대한 탈출'에 성공한 대표적인 국가다"라고 평가했다.

기적까지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전후 폐허더미에서 출발해 보릿고개를 시절을 거쳐 군부가 주도한 계획경제를 통해 신흥국으로 도약했다. 1960년 초반 100달러를 밑돌았던 국민소득은 1977년 1천달러를 돌파했고, 이후 성장의 가속페달을 밟으며 1995년 마침내 꿈의 '1만달러' 고지를 넘었다.

하지만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8년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 여진 속에 1인당 GNI는 7천355달러로 곤두박질쳤다. 밀레니엄 해인 2000년 1만841달러로 다시 1만달러를 회복한 끝에 2006년 2만795달러를 기록하며 '2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수출은 호조세였고, 부동산 등 자산 가치는 상승했다. 3만달러 고지가 눈앞인 듯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찾아왔고, 1인당 GNI는 2년 연속 하강 곡선을 그렸다. 2009년(1만8천256달러)에는 다시 1만 달러 후반대로 고꾸라졌다.

다행히 세계 경제는 양적 완화로 유동성 잔치 시대에 돌입했고, 이에 편승한 한국 경제도 꾸준한 상승세를 견지했다. 여기에 최근 수년간 반도체 호황 등으로 수출 실적이 좋아지면서 2만달러 달성 후 12년 만에 1인당 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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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지는 빈부격차…상위 20%가 부의 60% 소유

1960년대에 견줘 현재 국민소득은 300배나 늘었다. 하지만 3만달러의 과실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됐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유의미하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2017년 순자산(총자산-부채) 기준, 소득 상위 20%는 전체 순자산의 60%를 넘게 소유하고 있다. 반면 하위 절반이 보유한 순자산은 전체에서 11%에 불과하다.

소득도 부자에게 쏠리고 있다. '평등한 사회를 위한 고용복지정책의 역할' 보고서를 보면 2016년 기준 상위 10%가 벌어들이는 소득은 전체 개인 소득의 49.2%에 이른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2016년 가구의 소득 중앙값(가구 소득을 한줄로 늘어놓았을 때 전체의 정중앙에 있는 값)은 4천40만원에 불과하다.

주택 사정도 양극화됐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실에 따르면 다주택자 상위 10명이 보유한 집은 3천756채다. 범위를 늘려보면 상위 100명이 보유한 집은 1만4천663채에 달한다. 공시가격만 1조9천994억원으로, 1인당 평균 1천999억9천만원 상당의 주택을 가지고 있다. 은행 예금 자산도 상위 1%가 전체 예금의 45.2%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다. 청년층과 노년층이 몰려있는 1인 가구의 지출은 소득보다 더 많은 상황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작년 1인 가구 월평균 소득은 169만원, 지출은 177만원이다. 하위 10%의 순자산 전체 점유율은 -0.2%다. 자산보다 빚이 더 많다는 얘기다.

미래세대의 주역인 청년들의 실업도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지난 8월 10.0%를 기록했다. 이는 1999년 8월 10.7%를 기록한 이후 같은 달 기준으로 가장 높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는 그만큼 자본소득자가 증가한다는 방증"이라며 "한국이 OECD 국가 중에서 조세를 통한 재분배 효과가 가장 낮은 만큼 조세를 통해 부의 편중 현상을 어느 정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일각에선 낙수효과를 주장하는데 이는 40년이나 된 패러다임"이라며 "낙수효과를 고집한 결과 불평등은 심해졌다. 이제 새로운 인식의 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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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빚과 자살… "사회안전망 확충해야"

가계는 부채에 허덕이고, 높은 실업률 속에 자영업에 뛰어든 개인들은 폐업하기 일쑤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를 기준으로 금융기관 대출과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을 합친 가계부채(가계신용)는 1천500조원을 넘었다.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차주인 다중채무자의 1인당 평균 부채는 1억2천만원에 달한다. 4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다중채무자들은 대출 규모가 커 대출 돌려막기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자영업자 대출도 6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빚을 내 너도나도 장사에 나서지만, 유지하는 것도 벅차다. 1년간 개업 대비 폐업 수를 의미하는 자영업자 폐업률은 작년 87.9%에 달했고, 올해는 90%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남성, 40∼50대 집단에서 자영업자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살률)은 113명으로 같은 조건의 임금근로자 42명에 비해 거의 3배 수준으로 높았다.

이 교수는 "지난 10년간 분배가 악화한 데다 과거보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휴식도 줄게 됐다"며 "이 때문에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라 하더라도 이를 체감하기 어렵고, 사는 것도 팍팍하게 느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소득이 높아져도 삶의 질은 오히려 퇴보할 수 있다. 소득이 크게 늘지 않는다 해도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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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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