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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최애’ 연예인 찍고 보고 올리고 즐기는 ‘찍덕’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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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생일선물로 지하철 영상…‘팬사템’ 전문 상점도 등장

‘찍덕’ 성지 ‘뮤직뱅크’ 현장에는 영하 9도에도 수백명 몰려

초상권 위반 논란도 있지만…팬덤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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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7일 새벽 6시. 서울 영등포구 케이비에스(KBS) 신관 공개홀 후문에 카메라를 든 팬들 수백명이 밀집해 자리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대설’인 이날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9.1도. 맹추위에도 수백명의 팬들은 방송국 바깥까지 줄을 길게 늘어섰다. 일부는 전날 오후 1시부터 이곳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매주 금요일 새벽 6시가 되면 이곳은 항상 이렇게 붐빈다. 아이돌들이 출연하는 케이비에스 가요 프로그램 ‘뮤직뱅크’ 출근길이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10년 넘게 경호 업무를 해온 한 관계자는 “약 3년 전부터 ‘포토존’이 생기는 등 팬들이 가수들의 출근길을 사진으로 찍는 문화가 자리 잡혔다”고 말했다.

전날 저녁 7시부터 이 자리에서 밤을 새웠다는 한 중국인 팬은 “뉴이스트(NU’EST)가 출연할 때마다 뮤직뱅크 출근길에 왔다”며 “자연스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날씨가 추워도 나왔다”고 했다. 아침 8시께 가수들 대부분이 들어가고 기자들이 카메라를 철수한 뒤에도 일부 팬들은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가수들이 식사 시간이나 쉬는 시간 때 외출하는 ‘중출’(중간 외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팬은 “가수가 점심을 먹으러 나올 때까지 프리뷰(고화질 사진을 올리기 전에 미리 에스엔에스 등에 올리는 일종의 예고 사진)를 찍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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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찍은 영상이 ‘최애’에게 선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김아무개(30)씨에게 지난 4월4일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다. 김씨의 ‘최애’(가장 애정하는 연예인)는 ‘인투잇’(IN2IT)의 안무 반장인 ‘지안’이다. 김씨는 지안의 4월1일 생일을 기념해 자신이 직접 만든 생일 축하 영상을 지하철 광고로 걸었다. 그러자 4월4일 지안이 이 영상에 대한 감사 인사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한달 넘게 준비해서 만든 생일 축하 영상을 ‘최애’가 직접 찾아가서 봤다고 하니까 너무 기분 좋고, 뿌듯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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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캠코더를 들기 시작한 건 지난해 8월 ‘인투잇’이 데뷔할 때부터다. 국외 공연 때도 김씨는 캠코더를 들고 현장을 찾아갔다. 김씨에게 가장 바쁜 날은 팬 사인회가 있는 날이다. 아이돌 팬 사인회는 주로 비공개로 이뤄지기 때문에 영상이나 사진을 남겨둬야만 현장을 다시 추억할 수 있다. 김씨가 팬 사인회에서 ‘최애’의 모든 순간을 영상에 담는 이유다. “영상을 찍기 시작하면서 편집에 재미를 느꼈어요. 찍어두면 두고두고 볼 수 있는 게 ‘찍덕’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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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덕’은 김씨처럼 연예인들의 공연이나 행사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홈마’(홈페이지 마스터)라고도 불린다. 이들이 찍은 사진이나 영상은 주로 트위터나 팬 페이지에 올라오고, 리트위트(RT) 등을 통해 공유된다. 트위터 팔로어가 만명을 넘는 찍덕도 많다. 찍덕의 ‘최애’는 아이돌 가수에게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뮤지컬 배우나 운동선수도 찍덕의 ‘최애’가 되곤 한다.

중화권 연예인을 좋아하는 ㄱ(29)씨는 카메라를 든 지 2년이 됐다. ㄱ씨는 찍덕이 된 이유에 대해 “좋아하는 연예인을 한국 방송에서 거의 볼 수 없고, 국외에서 눈으로만 담기엔 아쉬워 사진을 찍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진을 찍을 때보다 보정할 때가 더 행복하다. “사진을 보정하면 미적인 욕망을 분출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그리고 보정을 할 때는 모니터로 사진을 확대하잖아요. 그럴 때 제가 좋아하는 매력 포인트를 크게 볼 수 있으니까 그럴 때도 짜릿하고요.”

ㄱ씨가 운영하는 중국 포털사이트 ‘웨이보’ 계정 팔로어는 1천명이 넘는다. 자신이 찍어서 올린 연예인 사진이 누군가의 프로필 사진으로 쓰일 때 뿌듯함을 느낀다는 ㄱ씨는 1년 전부터 학원에서 중국어 수업도 듣고 있다.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했을 때는 중국어를 하나도 못해서 소통이 너무 힘들었어요. 사진을 예쁘게, 더 많이 찍으려면 의사소통이 잘되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중국어 학원도 다니고 있어요.”

한번 스케줄을 따라갈 때 항공권과 호텔비만 50만원 가까이 드는데다 1년 전 새로 산 카메라의 카드 할부금이 아직 나가고 있어도 ㄱ씨는 찍덕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제가 찍은 사진을 보고 누군가 ‘이 연예인 멋있다, 잘생겼다’고 칭찬을 해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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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찍덕들을 위한 상품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가게도 생겼다. 지난 7월에는 ‘찍덕’들을 위한 상점 ‘더쿠샵’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열었다. 이곳은 팬들이 팬 사인회에서 가수들의 사진을 찍을 때 예쁘게 나오게 하려고 선물하는 화관, 인형, 모자 등 이른바 ‘팬사템’(팬 사인회 아이템)을 파는 공간이다. 음악방송이나 가수들의 출근길 등에서 사진을 찍을 때 필요한 의자, 사다리 등을 빌려주기도 한다. 더쿠샵 관계자는 “버튼을 누르면 귀가 올라가는 토끼 귀 모자가 요새는 가장 인기가 많다”며 “팬들이 팬 사인회에서 가수들의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아지면서 팬사템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찍덕들이 찍은 사진은 ‘굿즈’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팬들이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만든 ‘시즌 그리팅’이 대표적 사례다. 한 아이돌 그룹 ‘찍덕’의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글을 보니, 직접 찍은 아이돌 멤버의 사진으로 만든 탁상 달력, 플래너, 엽서, 포토카드, 포스터 등을 한 세트로 해서 2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팬들은 자신이 찍은 사진들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시즌 그리팅을 여러번 구입해본 경험이 있다는 이아무개(30)씨는 “소속사에서 시즌 그리팅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홈마가 제작한 시즌 그리팅의 경우 그 홈마만의 색감이나 순간 포착한 사진들이 많다는 점에서 희소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찍덕’들의 시즌 그리팅 판매가 초상권과 상표권 위반의 경계에 있다는 점이다. 촬영이 금지된 공연에서 영상을 찍어 올리는 팬들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있다. 지난 6월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소속사 스윙엔터테인먼트는 워너원 단독 콘서트를 촬영해 트위터와 유튜브에 올린 팬들에게 디엠(DM, Direct Message)을 보내 “단독 콘서트 영상 촬영은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삭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아이돌 전문 음악웹진 <아이돌로지>의 미묘 편집장은 이에 대해 “(시즌 그리팅은) 소속사에서 법적인 조처를 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도 “포토북을 수익으로 보기에 모호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미묘 편집장은 “팬들이 연예인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 모금을 하면 이에 대해 리워드(보답)를 하는 것처럼, 홈마가 자신이 찍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만든 시즌 그리팅으로 얻은 수익을 보통 가수들에게 선물을 주는 데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즌 그리팅을 리워드의 하나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묘 편집장은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도 “홈마들이 민사소송의 여지를 가지고 활동하게 두는 건 팬들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라며 “소속사가 ‘(불법인 것) 다 아는데 우리가 봐준다’는 입장을 가지기보다는 (사진 및 영상을 촬영하고 배포하는 행위를) 어느 선부터는 법 위반으로 대응하겠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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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위반 등의 논란에도 ‘찍덕’ 문화는 이제 중요한 ‘팬덤’ 문화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과거에는 저 연예인을 좋아하니까 찍는다는 식의 팬 활동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팬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는 등 사진이 생산품의 의미를 가지게 됐다”며 “올린 사진에 대한 다른 팬들의 반응, 인정 등에 만족감을 느끼면서 팬들이 더 열심히 사진을 찍게 되는 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고 분석했다.

글·사진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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