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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커피회사야 은행이야…스타벅스, 1조 모은 핀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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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핀테크(금융+기술) 혁명’이라는 주제로 열린 금융감독원 창립 20주년 기념 심포지엄. 구글·삼성전자·마이크로소프트(MS)·스타벅스 등 4개 기업 관계자들이 연사로 초대됐다. 글로벌 아이티(IT) 기업인 구글·삼성전자·엠에스와 자리를 함께 한 스타벅스가 사람들의 궁금증을 불러 모았다. 언뜻 생각하기에 커피 회사가 금융이나 아이티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스타벅스 쪽 연사였던 미셸 웨이츠 부사장(아시아태평양지역 마케팅 총괄)은 “커피 마케터가 왜 금융 콘퍼런스에 왔을까요?”라며 청중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이날 미셸 웨이츠 부사장의 발표 주제는 ‘디지털 혁신을 통한 진화하는 금융’. 거창한 제목엔 자신감이 묻어났고, 그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었다. 미국 디지털 시장조사업체 ‘이마케터’ 발표를 보면, 지난 5월 기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앱)은 스타벅스 앱이다. 2340만명이 스타벅스 앱에 내장된 선불카드를 충전하는 방식으로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씩은 커피를 산다. 미국 내 애플페이(2200만명), 구글페이(1110만명), 삼성페이(990만명) 이용자를 거뜬히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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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다른 ‘페이’들은 모든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결제할 수 있지만, 스타벅스 앱은 스타벅스 매장에서만 쓸 수 있는데도 소비자들은 열광한다. 스타벅스 내 전체 결제의 40%는 스타벅스 앱을 통해 이뤄진다. ‘이마케터’의 분석가 신디 리우는 “(소비자를 앱의) 리워드(보상) 프로그램과 엮을 수 있는 능력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스타벅스 앱 이용자들은 결제 기록에 따라 생일·공짜쿠폰, 할인 등 ‘보상’을 받는다. 국내도 사정은 비슷하다. 연말에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고객들이 스타벅스 앱으로 마시기 싫은 한정 음료까지 사서 적립하는 풍경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가 밝힌 ‘마이 스타벅스 리워드’ 가입자 수는 450만명이다.

스타벅스가 자체 결제 앱으로 소비자들을 ‘가두리’해서 얻는 효과는 고객의 충성도뿐만이 아니다. 2016년 시장조사업체 ‘에스앤피(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는 스타벅스가 선불카드와 모바일 앱으로 보유한 현금보유량이 12억 달러(약 1조4천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리퍼블릭뱅코프(10억1000만달러), 머천타일뱅크(6억8000만달러) 등 웬만한 지방은행 현금보유량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화제가 됐다. ‘스타벅스 은행’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브랜드 충성 바탕 현금까지 ‘가두리’
?스타벅스 앱, 미국 결제 앱 최선두
애플·구글페이보다 이용자 많고
선불카드·앱 보유 현금만 12억달러
웬만한 미국 지방은행 뛰어넘어


이용 실적 등 빅데이터에 기술 연계
마케팅·결제 방식 혁신 이어가


금융업 가능한 ‘핀테크 기업’ 진화
?국내 ‘스벅 리워드’ 가입자 450만
지난해 선불충전 추정액 691억
토스 등 7개 간편송금사 보유량 육박
“자산운용업 진출 땐 전통금융 큰 영향”


그렇다면 국내 소비자들이 쌓은 선불충전금과 이-기프트(e-gift) 규모는 얼마나 될까? 스타벅스코리아는 이를 영업비밀이라며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감사보고서를 통해 대략 추정은 할 수 있다. 백화점이 상품권을 팔아 현금을 받은 뒤 나중에 고객에게 물건을 내줘야 하는 것처럼, 선불충전금은 회계상 선수금 성격의 부채로 잡힌다. 이 회사 감사보고서를 보면, 2013년 151억원이었던 선수금 규모는 지난해 691억원으로 4배 넘게 뛰었다. 지난해 토스·카카오페이·페이코 등 국내 주요 간편송금업체 7곳이 보유한 잔액 785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스타벅스가 보유한 선불충전금은 은행에 예치만 해도 이자가 십수억원에 이르고, 자체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더 큰 매력 포인트는 어마어마한 빅데이터와 연계해 새로운 마케팅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스타벅스는 음료 취향, 충전 패턴, 매장 정보와 기온 등을 조합해 고객에게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고 있으며, 추천 알고리즘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신규 제품 개발에도 활용된다. 웨이츠 부사장은 “특히 밀레니얼 세대(1980년~2000년대생)는 효율적이고 편리한 방식을 추천받길 원한다”며 “수천만 데이터를 모아 소비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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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결합해 고객의 결제 편의를 높이려는 노력도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스타벅스에선 고객이 미리 모바일 앱으로 음료를 주문(사이렌 오더)한 뒤 매장을 찾으면, 음파로 스마트폰을 인식해 음료를 내준다. 국내에선 고객이 스타벅스 앱에 차량번호를 등록하면 (차량에서 주문하고 받아가는)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 고속도로 ‘하이패스’처럼 자동결제가 되는 방식이 도입됐다. 6월에 도입돼 석 달 만에 등록 차량 대수가 30만대를 넘어섰다.

국내 핀테크업계 한 관계자는 “브랜드 충성도를 바탕으로 이용자들의 결제를 묶어둘 수 있는 스타벅스는 카페 브랜드를 넘어 금융업으로 발전할 만한 충분한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며 “카드사 이상으로 결제방식을 혁신하고 있는 그 자체가 이미 뛰어난 핀테크 기업이다”라고 평가했다. 스타벅스 쪽을 연사로 섭외한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과 비교되는 수준의 예치금을 스타벅스가 본격적으로 운용하는 형태로 자산운용업에 진출하면 전통 금융업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간편송금서비스 충전금 안전장치가 없다

미국에서는 커피 업체인 스타벅스가 기술과 결합해 결제 시장에서 성공한 ‘특수한 사례’를 만들어냈다면, 국내에서 핀테크 변화를 선도하는 분야로는 간편송금서비스를 들 수 있다. ‘공인인증서 없는 송금과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간편송금업체들은 스타벅스처럼 송금 또는 결제에 앞서 선불충전을 받는데, 충전금에 대한 이자 지급이나 관리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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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업체 잔액 5월말 현재 1200억
이자 없고 업체 망해도 보호 안 돼
금감원 “별도 예치 의무화 논의 중”


토스(비바리퍼블리카)·네이버페이·체크페이(쿠콘)·카카오페이·페이코·페이나우(엘지유플러스)·핀크 등 국내 7개 간편송금서비스 업체가 고객에게 받아 보관 중인 미상환잔액은 2016년 말 236억9천만원에서 지난해 말 785억원으로 1년 새 3배 넘게 불었고, 올해 5월 말엔 1165억5천만원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이자는 지급되지 않는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상 간편송금서비스는 계좌이체로 충전한 선불금을 송금하는 ‘선불전자지급서비스’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은행 예·적금이 아니면서 고객에게 확정적인 이자를 준다고 약속하면 유사수신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카카오페이 관계자는 “법률적으로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충전금에 대해서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지만 제휴계좌를 쓰는 고객들에게 우대이율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간편송금업체들도 비슷하다.

고객 자산인 충전금 규모가 커지면서, 관리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은 업체가 이 돈을 위험한 곳에 투자하더라도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 업체가 망하더라도 고객은 충전금을 보호받지 못한다. 7개 업체는 충전금 대부분을 현금·보통예금(77.9%)이나 정기예금(20.4%) 계좌에 넣어 관리 중이지만, 일부는 다소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미상환잔액이 1천억원을 넘긴 만큼, 별도 규정이 없으면 회사로서는 이를 직접 운용하고 싶은 유인이 있을 수 있다”며 “고객자금을 별도 예치하는 방식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시행령이나 감독규정에 담을 수 있도록 금융위와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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