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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넘어지고도 벌떡… 한국 피겨 '새 역사'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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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차준환, 그랑프리 파이널 동메달… 한국 남자 첫 메달 획득

얼음판 위에 넘어지고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음악에 맞춰 4분 10초의 연기를 마친 소년은 두 무릎을 짚으며 숨을 내뱉었다.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새 역사를 축하하는 박수가 쏟아졌고, 인형 선물이 은반으로 날아들었다.

차준환(17·휘문고)이 8일 ISU(국제빙상연맹)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캐나다 밴쿠버)에서 174.42점을 얻으며, 전날 쇼트프로그램(89.07점)과의 합계 263.49점으로 동메달을 걸었다. 한국 선수로는 2009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이후 9년 만의 입상이었다. 한국 남자 선수 첫 파이널 출전의 메달 획득이었다. 차준환은 1위를 한 미국의 네이선 첸(282.42점), 2위인 일본의 우노 쇼마(275.10점)와 나란히 시상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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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프리 파이널 동메달을 건 차준환이 태극기를 어깨 뒤로 펼쳐들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이 태극기는 지난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 팬이 건네준 것이다. 차준환은“태극기를 두르면 기분이 좋다”고 했다. /TASS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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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밴쿠버의 한 호텔에서 만난 차준환은 "메달을 목에 걸고 태극기를 보니 어찌나 설레던지요. 링크를 돌며 세리머니할 때도 큰 태극기를 몸에 꼭 두르고 있었습니다. 저 애국자인가 봐요"라며 웃었다.

차준환은 프리스케이팅 첫 과제인 쿼드러플(4회전) 토루프 점프를 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후 4회전 살코를 비롯해 나머지 과제는 깔끔히 수행했다. 메달 획득의 여운으로 3시간밖에 못 잤다는 차준환은 "100점 만점에 70점 연기였다. 하지만 실수한 후 이를 악물고 뛰었다. 결과가 좋아 자랑스럽다"고 했다.

지난 6주간 진천선수촌에서 처방받은 소염진통제를 먹고, 발목에 얼음팩을 달고 살았다고 밝혔다. 작년부터 발에 맞지 않는 부츠가 문제였다. 10월 말 그랑프리 2차 대회(스케이트 캐나다 3위)를 치르면서 통증이 재발했다. 발등엔 멍 자국이 선명하다. 그런데도 차준환은 "어디가 부러지지 않는 한 견디면서 경기하려고요. 이번 대회를 치르며 결국 정신력 싸움이란 걸 알았습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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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10대 선수가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입상하기는 드문 일이다. 예브게니 플루셴코(러시아)는 1999년 당시 만 16세 4개월에 파이널 메달(동)을 걸었다. 하뉴 유즈루(일본)는 만 18세이던 2012년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두 사람 모두 올림픽 챔피언이 됐다. 2001년 10월 21일생인 차준환은 만 17세 48일 만에 그랑프리 파이널 메달을 걸었다.

차준환은 '남자 피겨 개척자'라는 별명에 대해 "부담스럽기보단 동기 부여가 된다. 수식어에 걸맞은 선수가 되려고 더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메달을 따고 소셜미디어로 축하 메시지를 수백 통 받았는데, 하나하나 다 읽는 중이다. 프로그램을 보고 감동받았다는 칭찬이 가장 듣기 좋다.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라며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10개월 전인 평창 동계올림픽과 비교하면 성장 속도가 눈부시다. 차준환은 "원래 긴장을 많이 했는데, 평창 때 홈 팬의 환호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내겐 좋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이번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남녀 싱글 경기 채점을 맡은 이정수 ISU 심판은 "지난 시즌 막판부터 차준환의 기술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다. '차준환의 프로그램이 마음에 든다'고 내게 말한 외국 심판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차준환은 11일 귀국해 21일부터 열리는 회장배 랭킹전에 나선다. "이제 안방으로 가는 거잖아요. 즐기며 스케이트 타고 싶습니다. 한국에서 만나요!"

[밴쿠버=이순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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