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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글로벌 수소전지社 인수한 중국… 수소차 충전소도 짓기 힘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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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연료전지 특허만 130개를 갖고 있는 캐나다 업체 발라드가 지난 8월 중국에 팔렸다. 중국 최대 디젤엔진 업체인 웨이차이가 지분 19.9%를 사들여 최대주주가 됐다. 발라드는 수소차의 심장이라는 '연료전지'의 글로벌 선두 업체이다. 발라드는 웨이차이에 연료전지 핵심 기술을 이전하고, 2021년까지 중국 수소 트럭·버스에 들어갈 전지를 공동 생산하기로 했다.

구영모 자동차부품연구원 팀장은 "중국이 수소차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신호탄"이라며 "중국이 선도업체와 비슷한 고효율의 장거리 운행이 가능한 연료전지를 개발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이미 '수소 사회'를 국가 어젠다로 선정한 일본은 지난달 23일 주요 20개 국가 정상이 참여하는 G20 회의에 앞서 'G20수소에너지 장관회의'를 열고 '도쿄 선언문'을 발표했다. 도쿄선언문은 글로벌 주요국들이 수소 기술 관련 규제·규약·기준을 단일화하는 데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프랑스가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으로 온실가스 감축 의제를 주도했듯, 일본이 수소 기술 '표준화'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수소차를 양산하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수소차를 출시한 나라지만, 한·중·일이 치열하게 벌이는 수소차 표준 경쟁에서는 밀릴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한국은 각종 규제와 인식 부족으로 수소 충전소 하나 제대로 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뒤늦게 뛰어든 중국이 위협적인 것은 물량공세로 국제 표준을 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은 '움직이는 공기청정기'로 불리는 수소차에 주목, 2030년까지 100만 대 보급 목표를 발표했다. 중국이 이 목표를 200만 대 이상으로 수정할 것이란 얘기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엄석기 한양대 교수는 "한·중·일 수소차 표준 경쟁이 시작됐다"며 "한국이 자동차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먼저 확보한 건 수소차가 처음인데, 이러다가 최고 기술을 갖고도 표준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중국의 '수소차 굴기'가 무서운 이유는 각종 규제로 막혀 있는 한국과 달리, 정부가 밀어붙이면 엄청난 속도로 충전소를 짓고 수소차를 보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미 수소차를 생산하는 기업이 10여 개에 달하고 세계 최대 수소버스 생산공장도 갖고 있다. 작년 한 해에만 수소버스 900대, 수소트럭 200대를 생산했다. 올해에는 2000대 추가 생산이 예상된다. 이미 중국은 수소 충전 압력이 350바(bar)인 수소차에만 6000만원 상당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효율이 더 높은 700바 급인 한국·일본의 수소차 수입은 막고 있다. 한국 배터리업체에 보조금 지급을 막아 자국 전기차와 배터리 업체를 육성하는 것과 같은 정책이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2014년 말 도요타가 최초 수소차 '미라이'를 출시했을 때 1호 고객이 됐다. 아베 총리는 이듬해 1월, 차를 직접 몰고 거리로 나가 시민들을 만났다.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수소 올림픽'으로 명명하고, 도쿄 전역에 수소버스를 100대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올림픽 때까지 수소차를 4만 대로 늘리고, 충전소는 160개까지 짓기로 했다. 일본은 친환경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하는 '수소 사회' 청사진도 그리고 있다.

기술은 세계 최고… '규모의 경제' 밀려

수소차는 한국이 세계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현대차는 1998년부터 수소차 개발에 착수, 2013년 세계 최초의 양산 수소차 투싼ix를 출시했다. 지난 3월엔 완충 시 주행거리(609㎞)가 전 세계 수소차 중 가장 긴 넥쏘를 내놓았다. 소음도 적고 전지 효율도 세계 최고라는 평을 받았다.

이 차의 수소연료전지는 국내 협력사 300여개(1차 150개)와 협업해 만든 것으로, 부품 국산화율이 99%에 이른다. 한국의 수소차와 수소연료전지가 전 세계에 팔리면, 국내 부품사들도 함께 '글로벌 표준'이 되고 수출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글로벌 수소차 시장 규모는 올해 5만 대에서 2022년 26만 대, 2030년에는 220만 대로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한국은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고 있다. 2014년부터 판매를 시작한 도요타 미라이의 글로벌 총 누적 판매량은 5300여 대다. 혼다의 클래리티는 2016년 출시 이후 2000여 대가 팔렸다. 그보다 먼저 출시된 투싼 ix35의 5년간 판매 실적은 1000여 대에 불과하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이유는 수소전지 기술력이 상향 평준화되면, '원가 경쟁'이 승부를 좌우한다. 막대한 개발 비용에 비해 판매량이 미미하니 현대차를 비롯한 협력사들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대량 판매와 생산이 가능해야 수익을 내고 가격을 낮춰 시장을 압도할 수 있다.

수소차 개발을 먼저 시작한 도요타는 현대차가 넥쏘로 최고의 기술력을 선보이자, 이를 뛰어넘는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의 수소차 전담 인력은 300여 명이지만, 도요타는 1000여 명에 달한다. 도요타는 2020년 미라이의 후속 모델을 출시해 생산 능력을 지금의 10배인 3만 대로 늘리고, 가격은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국내 수소차 전문가인 김세훈 현대차 상무는 "현대차 연료전지는 효율이 세계 최고이고 원가도 경쟁사 대비 낮아 경쟁력이 있지만, 양으로 밀어붙이는 중국·일본에 언제 따라잡힐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럽·미국도 추격 중… 인프라 더 좋아

수소연료전지에 대한 개발을 초기부터 해왔던 유럽과 미국도 수소차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아우디는 현대차에 손을 내밀어 동맹을 맺었고, 벤츠는 포드, 폴크스바겐은 발라드, GM은 혼다, BMW는 도요타와 손잡고 수소차를 개발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사 최초의 수소차인 GLC F-CELL을 연내 출시한다. 업계 관계자는 "2022~2025년 사이에 대다수 완성차업체가 수소차를 양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의 수소차 기술력은 한국·일본에는 밀려 있지만 인프라는 한·중·일보다 앞서 있다. 전 세계 수소 충전소 320여 개 중에 140여 개가 유럽에, 70여 개가 북미에 있다. 특히 독일은 내년 상반기까지 충전소가 100여 개 구축된다. 유럽과 미국이 당장은 도요타와 현대차를 수입해 쓰고 있지만, 인프라가 잘돼 있어 언제든 자국 업체들이 비슷한 수준의 차량을 개발하면 판매량을 금방 뒤집을 수 있다.

한국 정부도 2020년 1만 대, 2025년 10만 대, 2030년 63만 대 보급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준범 울산대 교수는 "일단 한국에서 성공한 모델임을 보여줘야 해외에서도 호응을 얻을 수 있다"며 "전국적으로 수소충전소 300개 정도를 조기에 갖춰야 수소차 보급과 충전소 수익성 확보의 선순환이 가능하고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정 기자(wel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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