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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기자의 시각] '귀를 막은' 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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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백건 사회부 법조팀장


부산고등법원 소속 판사 7명이 최근 자체 판사회의를 소집했다. 지난달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양승태 법원행정처'에서 일했던 판사들의 탄핵을 촉구했었는데, 부산고법 해당 판사들은 '이는 우리의 뜻과 다르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은 동료 판사 탄핵을 밀어붙인 부산고법 소속 법관대표회의 판사 해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달 중 회의를 열기로 했다. 판사 탄핵에 앞장섰던 법관대표회의 판사가 동료 판사들에 의해 탄핵 위기에 몰린 셈이다.

이 소식을 듣고 두 장면이 떠올랐다. 먼저 올 6월 11일 열린 법관대표회의다. 이 회의에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할 것인지를 논의할 예정이었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핵심 인사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의혹 당사자로서 판사님들에게 잘못된 의혹은 해명하고 부적절했던 것은 사과하고 싶다"며 이 회의에 참석하고 싶어 했다. 그는 법관대표회의 운영진에 "참석을 허락해 달라"는 뜻을 전했지만, 운영진은 거절했다. "부적절하다"는 이유가 전부였다고 한다. 법관대표회의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한 운영진 13명 중 최소 7명이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다.

두 번째는 작년 7월 24일 열린 법관대표회의다. 이날 회의에선 법관대표회의 소속이자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인 최한돈 부장판사의 거취가 참석자들의 입에 올랐다. 최 부장판사는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을 직접 조사하게 해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사표를 냈다. 회의 참석자들은 "양승태 대법원장 때문이다" "사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한 판사가 "제도 개선이 아닌 개별 판사의 거취 문제를 다루는 건 회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순간 주변에서 "우~" "무례하다"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분위기가 험악해져 다른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고 했다. 이날 법관대표회의 참석자 중 최 부장판사가 속한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가 절반에 육박했다.

판사의 중요한 덕목은 '경청(傾聽)'이다. 흉악한 살인범의 "억울하다"는 해명도 들어줘야 한다. 그런데 판사 대표가 모였다는 법관대표회의는 귀를 막고 미리 정해진 목표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적지 않다. 실제 지난해 법관대표회의가 열린 직후 법원 온라인망에는 '회의에 가 보니 이미 결의안이 출력돼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결론을 정해놓고 회의를 했다는 것이다.

동료 판사에 대한 탄핵 결의도 이런 식으로 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판사들이 정치하고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부산고법 판사들이 반발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이런 법관대표회의가 과연 판사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나.

[조백건 사회부 법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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