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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조용헌 살롱] [1172] 지리산 兩端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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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시절 인연이 좋지 않을 때에는 산천을 둘러보면서 마음을 씻어야 한다. 문필봉이 저 앞에 있어서 인물이 나왔구나, 밥상처럼 평평한 토체봉(土體峰)이 동네 앞에 있어서 부자가 나왔구나 등등을 보고 다니면 정신이 상쾌해진다. 인간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저 말 없는 자연이다.

지리산 일대에서 유명한 명당이 양단수(兩端水)가 모이는 경남 산청군 시천면 덕산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양단수를 이렇게 읊었다. '지리산 양단수를 옛날부터 들었지만 이제 와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이야, 무릉도원이 어디에 있느냐? 나는 이곳인가 하노라.' 지리산 중산리에서 내려오는 계곡물과 대원사의 계곡물이 덕산의 대숲 근처에서 합수(合水)가 된다.

예로부터 두 갈래의 계곡물이 합쳐지는 곳은 영험한 기운이 뭉치는 명당으로 알려졌다. 덕산이 바로 이런 곳이니까 남명 선생도 특별히 주목했던 것이다. 그래서 말년에 이곳에다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후학들을 양성했다. 양단수가 합해져서 덕천강(德川江)이 되고, 이게 흘러가서 진주 수곡에서 경호강(덕유산에서 흘러온 강)과 다시 합수된다. 여기서부터 남강(南江)이 되는 것이다.

산천재 바로 옆에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이 자리 잡고 있다. 남명 사상을 공부하고 실천하자는 취지의 연구원이다. 이 터가 좋다. 천왕봉에서 내려온 지맥이 야트막하게 뭉친 의방산(義方山)이 연구원 뒤를 받치고 그 앞으로는 맑은 덕천강이 흐른다. 강 너머 정면에는 예쁘게 생긴 비룡산이, 우측으로는 구곡산이 호위하고 있다. 남명의 고제(高弟)가 수우당(守愚堂) 최영경(崔永慶)이고, 이 수우당의 13세손인 최구식(58)이 현재 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최병렬과 최재경도 수우당 후손이다. 인조반정(1623) 이후로 쇠락한 남명 학파를 근래에 재조명하는 데 사재를 턴 부산교통의 조옥환(曺玉煥·87)은 남명의 후손이다. 사업으로 번 돈 수백억원을 지난 40년간 모두 여기에다 썼다. 지리산 양단수처럼 수백 년간 이어지는 두 집안의 인연이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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