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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유럽발 OA, 美·中 참여로 활기…"韓형 OA 전환 모델 고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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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베를린(독일)=류준영 기자] [편집자주] “매년 오르는 해외 학술지 구독료 부담이 큽니다.” 서울대 도서관 관계자의 말이다. 학술 출판 시장에서 점유율이 가장 높은 엘스비어(Elsevier), 와일리(Wiley), 스프링어(Springer) 등 외국 대형출판사가 매년 구독료를 3~4%씩 올린 탓에 도서관 운영 경비도 그만큼 매년 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발표한 ‘2017년 대학도서관 통계조사 및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대 도서관은 전자저널 구독에 80여억원을 썼다. 일부 대학의 경우 구독료를 감당 못해 전자저널 구독 중단 사태도 벌어진다.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대학도서관에서 지불한 전자저널 구독료는 1627억원이며 공공연구기관에서 지불한 비용까지 합하면 2000억 원에 달한다.

[‘제14회 베를린 OA 콘퍼런스’ 개최…“EU 협의체처럼 韓中日도 함께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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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베를린 오픈 액세스(Open Access, OA) 콘퍼런스’ 현장 모습/사진=KIS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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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하르나크 하우스(Harnack House)에서 열린 ‘제14회 베를린 오픈 액세스(Open Access, OA) 콘퍼런스’에는 서울대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전세계 대학 도서관 및 국책 연구소와 정부 부처, 연구기금기관 등의 관계자들이 모였다. OA는 학술지에 등록된 논문을 구독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인터넷에서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하자는 새로운 정보 유통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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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막스플랑크 디지털 도서관 랄프 쉼머 박사/사진=류준영 기자


◇유럽협의체 일성 “OA 전환하지 않으면 전기코드 뽑겠다”=
이번 콘퍼런스는 전세계 37개국 170여명의 전문가가 모여 2020년까지 구독료 기반 학술지의 90%를 게재료만 내면 누구든지 무료로 볼 수 있는 OA 학술지로 전환하는 ‘OA 2020’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다. 주최 측은 “국가 예산이 들어간 연구 논문은 국민 모두가 볼 수 있어야 하는 데 거대 출판사들이 구독 가격을 수십년 간 지속적으로 올려 학술 정보에 접근하기 힘들어졌다”며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학자, 중간에서 학술정보를 유통하는 도서관 등이 함께 힘을 모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내용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독일과 스웨덴이 엘스비어에 ‘구독 보이콧’ 사례다. 양국이 엘스비어와 계약을 중단한 지 1년 6개월이 넘었다. 양국은 엘스비어 계약 조건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구독료를 낮출 것을 요구하며 계약 협상을 중단했다. 엘스비어 측이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 경우 해당 국가 대학·연구소 과학자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취지를 이해하고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보내고 있다고 후문이다. 두 나라를 비롯한 영국, 네델란드 등의 유럽협의체는 엘스비어에 “OA 전환에 협조하지 않으면 전기 코드를 아예 뽑겠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디지털 도서관 랄프 쉼머 박사는 “전자저널 구입비가 지금처럼 계속 오르면 전자저널 열람이 어렵게 돼 결국 새로운 연구 정보 유통 및 연구 생산성 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구독료의 과도한 인상을 막기 위해 전자저널 구독 협상체계를 현실에 맞게 개선하고, 필요 시 공동대응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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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욱 서울대 의대 병리학과 교수(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이사장)/사진=류준영 기자


◇“韓中日도 머리 맞대야”…학술 출판 권력 대응=
행사 첫날 토론 좌장을 맡은 서정욱 서울대 의대 병리학과 교수(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이사장)는 “EU(유럽연합) 협의체처럼 한·중·일도 뜻을 함께 해 학술정보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의외로 OA 정책에 적극적이다. 이번 컨퍼런스에 발표된 중국의 OA 정책 성과 발표는 참석자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중국은 정부출연연구기관 및 대학 도서관이 아닌 정부가 직접 나서 출판사들과 OA 전환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 대표단 측은 “OA 전환을 통한 자유로운 학술정보 활용이 중국의 혁신적인 학문 발전에 견인차가 되고 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OA 협상에 유보적이던 미국도 OA 대열에 전격 합류했다. UC 버클리 대학의 경우 올해 교수진들 주도로 OA 전환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저작권은 저자의 신성한 권리이며, 연구결과 이용·확산 장애요소는 모두 제거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UCLA, UC 샌디에이고 등 UC 계열 대학들의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선 각 대학·연구소 논문을 OA로 전환하는 주정부법 개정을 진행하고 있다. 김혜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책임연구원은 “주로 유럽 중심으로 이뤄지던 OA 운동이 중국과 미국의 참여로 더 활기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콘퍼런스 둘째날에는 OA 전환 요구에 미온적인 엘스비어·와일리·스프링어 글로벌 대표와의 비공개 패널 토론이 펼쳐졌다. 한 참석자는 “논문 저자는 연구자이고 연구자가 곧 논문의 소유주인데도 불구하고 연구자는 구독료 때문에 논문을 마음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반면, 출판사는 논문을 팔아 남긴 수익의 40% 이상을 투자자에게 배당하고 있다는 사례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해외대형출판사에 적잖은 구독료를 국가 세금으로 지급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전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OA 관련 정책 및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김환민 KISTI 학술정보공유센터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 논문 생산량은 전세계 6위로 OA 전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출판사와의 구독 특성 등을 고려한 한국형 OA 전환 모델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베를린(독일)=류준영 기자 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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