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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목멱칼럼]정권의 신념과 가치 그리고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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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과거 대통령들이 해외 순방을 할 때면, 지지율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대통령이 해외에 나가 국내 정치와 일정 부분 거리를 두게 되면,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런데 요새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 이런 분석이 무색한 것 같다. 최근 갤럽의 여론조사(지난 12월 4~6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
이데일리

3.1%p)를 보더라도, 지지율 49%로 문 정권 출범 후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하더라도 지지율의 하락세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문재인 정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그래도 과거 대통령들의 지지율보다는 높은 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이 역시 딱 맞아 떨어지는 분석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한국 갤럽의 자료를 근거로 대통령 2년차 2분기 지지율을 보면, 노태우 정권이 28%, 김영삼 55%, 김대중 52% 그리고 노무현 34%, 이명박 27%, 박근혜 61%였다. 그리고 집권 2년차 3분기 지지율을 보면 김대중 46%, 김영삼 44%, 박근혜 44%, 노무현 36% 그리고 이명박 36% 순이었다. 이런 역대 대통령들의 지지율을 봤을 때, 문재인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은 낮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역대 대통령 지지율 중 뛰어나게 높은 편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4월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2008년 5월부터 광우병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지지율은 왜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질까? 미국에서는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 원인에 대한 연구가 일찍부터 있어왔다. 스팀슨이나 뮬러 같은 정치학자는, 선거 때는 후보자가 지지층의 외연 확장을 위해 이념적으로 모호한 구호와 추상적 가치를 외치는데, 선거 때에는 유권자들이 후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이런 모호성에 넘어가게 되지만, 막상 당선이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통령의 능력 부족이 드러나게 되고 대통령 스스로도 이념적 모호성을 벗어 던지기 때문에 이념이 다름에도 지지했던 유권자들과 대통령의 능력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지지를 철회하기에 대통령의 지지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드시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통령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실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결국 국민적 실망으로 이어져 지지율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정권이 출범했을 때는 대통령의 집무실에 청년 실업 상황 게시판까지 설치하면서 뭔가를 해줄 것 같은 느낌을 줬지만, 현재 청년 실업률은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고, 최저 임금의 급격한 상승으로 자영업자들의 생계는 피폐해지고 있으며 청년들의 아르바이트 자리는 자꾸 줄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권의 신념이나 취지가 선(善)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념과 취지가 선하다고 그것이 결과의 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정치란 현실의 세계에서 사회적 갈등을 축소시키는 것이 그 존재의 목적인데, 신념과 취지라는 추상적 가치의 세계에 매몰됐다가는 갈등의 축소라는 정치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능력으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지, 자신들의 신념과 취지가 선하기에 이를 믿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해외 순방 때 문재인 대통령은 “국내에서 많은 일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믿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의로운 나라, 국민들의 염원을 꼭 이뤄내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언급 속에는 ‘어떻게’가 빠져 있다. ‘정의’나 ‘믿음’은 추상적 가치이고, ‘어떻게’는 현실인데, 이런 걸 보면 문재인 정부는 아직도 가치와 신념만 강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 소속 공무원들의 비리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신념과 가치의 주장은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지금 청와대에 필요한 것은 신념과 철학이라는 추상적 의도를 믿어달라고 할 때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철저하고 냉혹한 성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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