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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시시비비]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일본을 계속 압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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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이진수 선임기자] 일제 강점기 일본의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해 우리 법원에서 손해배상 판결이 잇따르고 있지만 일본 정부 및 피고 기업들은 판결 결과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피해자 측 변호인들이 이달 4일 판결 이행을 촉구하고자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전범기업'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본사로 두 번째 찾아갔으나 직접 면담은 또 이뤄지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전 징용공(徵用工ㆍ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 문제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국제법은 국가간 합의 준수가 원칙으로 사법ㆍ입법ㆍ행정을 초월한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16일 보수 성향의 일본 매체 산케이(産經)신문이 운영하는 오피니언 사이트 '이론나(iRONNA)'에 "청구권 협정은 1965년 국교 정상화를 위한 한일 기본 조약과 함께 맺어진 양국 관계의 기반"이라며 "민간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글도 실렸다.

게다가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한국과 싸운 게 아니니 한국은 일본의 전쟁에 대해 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라는 억지 논리까지 펼쳐졌다.

우리 대법원은 2012년 "청구권 협정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부인했다"며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청구권 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됐다 보긴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원고들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5년 7월 6일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944년 9월부터 1945년 8월 종전 때까지 국민징용령에 근거해 한반도 출신자의 징용이 이뤄졌다"며 이런 동원이 "이른바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일본 정부의 기존 견해"라고 밝혔다. 침략과 식민지배가 합법이었으므로 그에 따른 조선인 징용이 강제노동은 아니라는 논리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적인 강점이었으며 강제동원 자체가 불법이라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를 부정한 셈이다.

일제는 1939년 국가총동원법에 기초해 '국민징용령'을 제정했다. 이후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아래 상당수가 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과중한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전범으로 희생되기도 했다.

일본은 우리 법원의 판결로 일제 강점기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자국에 법적 책임을 묻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소송은 모든 종류의 '강제노동 피해자'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한일 양국 기업과 우리 정부가 함께 재단을 설립해 피해자 배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일본 기업들의 배상 판결 이행 가능성이 희박하니 독일의 '기억ㆍ미래ㆍ책임 재단' 같은 재단을 만들어 피해자 구제에 나서자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 및 기업들로부터 일제 강점기 만행과 관련해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아내지 못한 상황에서 이는 우리 스스로를 옭아매는 꼴이 될 것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가 한낱 '한국판 홍위병의 살풀이'라는 인식이 일본 내에 자리잡고 있는 한 화해와 치유는 불가능하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불법 강점이었으며 강제동원 자체가 불법이었음을 몇 년이 걸리든 일본에 계속 주지시키며 압박해야 한다.

이진수 선임기자 comm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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