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합의안 국회 비준 투표를 하루 앞두고 이를 전격 연기하면서 국정 운영 능력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메이 총리의 불통 행보가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분석에 이어 메이 정부의 임기가 사실상 끝났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메이 총리는 유럽연합(EU)과 브렉시트 합의안을 재협상하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로 떠날 예정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보도했다. 이날은 당초 지난달 영국과 EU가 도출한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영국 하원 비준 투표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10일 메이 총리는 투표가 큰 격차의 패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이를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합의안 부결 시 내년 3월 영국이 별도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no deal)' 브렉시트 상황에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는 EU 측과 합의안 재협상에 나설 방침이다. 하지만 재협상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이번 연기로 메이 정부의 국정 운영 동력이 없어졌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안팎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협상안을 밀어붙였던 메이 총리가 의회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자인함으로써 리더십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분석이다.
취임 당시 제2의 마거릿 대처가 될 것이라고 각광받았던 메이 총리의 몰락은 부족한 소통 능력이 주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합의안 과정에서도 강경 일변도로 국정을 진행한 것이 우군 이탈을 부른 것으로 분석된다. 협상안이 영국 하원의 비준을 받으려면 메이 총리는 의결권이 있는 의원 639명 중 절반 이상인 320명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집권당인 보수당 314명 전원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영국독립당(DUP) 10명의 동의를 얻으면 통과가 가능하다. 하지만 보수당 내 강경파 70~80명과 DUP는 표결 전부터 협상안에 포함된 '안전장치(backstop)'가 영국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반대해 왔다. '안전장치'는 '노딜 브렉시트' 시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가 EU의 관세동맹 안에 머물 것으로 일단 '안전장치'가 가동되면 영국은 이를 무효화할 수 없다. 하지만 메이 총리는 지난 6일에도 BBC와 인터뷰하면서 "안전장치 없이는 '노딜'이 될 수 있다"며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총리와 국정을 이끌 내각과 소통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달 영국과 EU가 브렉시트 합의안을 도출한 후 도미니크 랍 브렉시트부 장관 등 장관 4명이 이틀에 걸쳐 줄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지 않은 것도 문제시되는 태도다. 지난 9월 영국 사회연구소 '냇센' 등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인 중 59%가 다시 투표한다면 EU '잔류'를 선택하겠다고 응답했다. 노동당 등 영국 야당 등도 제2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언급하고, 유럽사법재판소 역시 10일 "영국은 브렉시트를 번복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을 냈지만 메이 총리는 "제2의 국민투표는 없다"고 여지를 남기지 않아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한편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11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 출석해 "영국 의회 비준동의를 받지 못하는 메이 총리의 무능력에 놀랐다"면서 "브렉시트 합의 재협상은 없고 내용을 명확히 해석하는 식의 논의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류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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