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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 불량자재에 인분 뿌려 검사 통과…5G 기지국 ‘통신재난’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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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뢰·접지에 불량 자재”

국가 인증 없어 “무조건 싼 거”

접지봉, 동 도금 아니고

공사비 아끼느라 얕게 묻어

피뢰침도 순동 제품 아냐

‘낙뢰’에 통신 재난 가능성

벼락 소멸 않고, 통신선 타고 흘러

통신장비 손상돼 화재 날 위험

기존 이통은 통화만 장애

새 이통에서는 대형 사고 우려

“과기-산업부 서로 영역 미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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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세계 최초 상용화”를 외치며 앞다퉈 늘려가고 있는 새 이동통신(5G) 기지국(휴대전화와 직접 이동통신 전파를 주고받는 설비)이 대부분 낙뢰에 취약한 상태로 설치돼 현장점검과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뢰·접지 시설 공사에 불량 자재를 사용하고 유지보수를 안해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기존 건물·기지국의 피뢰·접지 시설에 의존하는 형태로 설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기지국 공사를 맡고 있는 통신공사 업체와 피뢰·접지 자재 제조업체 쪽에서 전했다.

기지국의 피뢰·접지 시설이 제 기능을 못하면 이동통신 서비스가 낙뢰에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한 통신사 전직 임원은 “지역 책임자로 근무할 때, 이동통신 기지국과 초고속인터넷 장비 등에 낙뢰 피해가 많았다. 해마다 장마철을 앞두고 직원들과 지역 내 명산에 올라가 낙뢰를 내리지 말라는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물론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이동통신 기지국의 피뢰·접지 시설에 불량 자재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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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통신공사 업체와 피뢰·접지 자재 공급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동통신사들은 통신공사 업체에 기지국 공사를 맡길 때, 안테나와 전파 송수신 장치 등 통신장비만 건넬 뿐 피뢰·접지 시설 공사에 사용되는 자재는 직접 구매해서 공사하도록 하고 있다. 전기 콘센트와 전기선처럼 피뢰·접지 자재도 ‘지입장비’로 분류해 공사업체한테 직접 조달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전기용품들과 달리 피뢰·접지 자재는 국가(KS)인증이 없다. 한 제조업체 대표는 “국가 규격은 만들어져 있으나 규격을 충족하는지 시험하는 업체가 지정돼 있지 않아 인증받은 제품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교량·도로나 고층 건물의 피뢰·접지 시설에는 대부분 미국의 유엘(UL·미국 안전규격 인증기관)인증 자재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기지국 공사 때 이를 요구하지 않는다. 통신공사 업체 관계자는 “어떤 것을 써야 한다는 조건이 없어 무조건 싼 걸 사다 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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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땅 속에 뭍는 접지봉이 제구실을 하려면 지름 1㎝ 굵에 쇠 막대에 동을 0.2㎜ 이상 두께로 도급된 자재가 사용돼야 하지만, 대부분 동 도금이 아닌 막으로 싸여진 형태의 자재가 사용되고 있다. 이런 자재는 휘거나 땅에 박을 때 막이 찢어지면 제성능을 내지 못한다. 공사도 접지봉이 2m(최소 75㎝ 이상) 깊이까지 묻히게 해야 하지만, 공사비를 아끼느라 얕게 묻는 경우가 많다. 피뢰침 부분 역시 순동 제품이어야 하는데, 구리 도금된 알루미늄 소재 자재가 쓰일 때도 많다.

한 통신공사 대표는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책정한 공사비에 맞추려면 지입장비는 무조건 싼 자재를 쓸 수밖에 없다. 불량 자재라는 걸 알면서 쓰는 경우도 많다. 기지국 준공검사 때 접지저항 기준을 맞추기 위해 접지봉 옆에 인분을 뿌리고 흙을 덮기도 한다”며 “도심 건물 위 기지국의 접지저항을 불시에 측정해보면, 상당수가 10Ω 이하로 돼 있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뢰·접지 시설이 제구실을 못하면 낙뢰 발생시 전기가 땅 속으로 소멸하지 못하고 전기·통신선을 타고 역류해 통신장비를 손상시킨다. 화재를 일으킬 수도 있다. 이동통신 기지국에는 역류하거나 멀리서 발생한 낙뢰 전기가 전기·통신선을 타고 오는 것(업계에선 ‘유도뢰’라고 부름)을 차단하기 위해 ‘서지보호장비(SPD)’란 장비가 달리는데, 이 부품 조달도 통신공사 업체에 맡겨져 저사양 제품이 쓰이거나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화웨이는 이를 막기 위해 새 이동통신 기지국 장비에 이 장치를 기본 장착해 공금하고 있다.

새 이동통신 기지국 안테나는 낙뢰에 더 취약한 상태로 설치되고 있다. 기술 특성상 도심의 새 이동통신 기지국 안테나는 도로 쪽을 직접 지향하는 모습으로 설치되면서 옥상에 둘 때도 건물 밖으로 삐져나오는 모양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기존 기지국에 설치되면서 피뢰침 보호각(45~60도)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통신공사 업체 대표는 “이럴 때는 피뢰·접지 시설을 별도로 설치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을 때가 많다. 세계 최초 상용화 목표를 위해 새 이동통신 기지국을 빨리 늘리는데 급급해 꼼꼼히 살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통신 기지국은 전파 송수신 가능 반경이 서로 중첩되게 설계돼, 3세대 이전의 음성통화 중심 서비스에서는 기지국이 장애를 일으켜도 통화 연결이 잠시 늦어지거나 통화 품질 상태가 조금 나빠지는 현상 정도만 발생했다. 엘티이(LTE) 서비스 이용자들도 인접한 기지국이 동시에 장애를 일으키지 않는 한 데이터 속도가 느려지는 불편만 겪을 뿐이다.

하지만 새 이동통신 기지국에서 장애가 발생하면 ‘통신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새 이동통신 기반으로 스마트 공장을 구축해 운영하는 기업에서는 기지국 장애로 이동통신 품질이 나빠질 경우 공장 가동이나 제품 불량률이 높아질 수 있고, 새 이동통신 기반 모바일 실시간 헬스케어나 자율주행 서비스 이용자들은 자칫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에 세계통신연합(ITU)은 새 이동통신 기술 등장에 맞춰 2013년 ‘기지국 낙뢰 보호 표준’(ITU-K 시리즈)을 제정해 권고했고, 해마다 표준 규격을 보완·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이동통신 사업자들과 통신공사 업체들은 이런 표준이 있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정부 안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서로 상대방 영역이라고 미루고 있다”며 “이게 이동통신 기지국 피뢰·접지 시설에 싸구려 불량 자재가 사용돼 낙뢰 피해 발생 가능성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은 이와 관련해 서울 을지로 3가 건물 옥상의 기지국을 <한겨레>에 공개하며 “정기적으로 피뢰시설 상태 확인 점검을 하고 있다. 다만, 피뢰·접지 시설의 경우, 따로 설치하고 싶어도 건물주가 허용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케이티(KT)는 “정상적으로 준공 허가를 받아 운용 중”이라고 밝힐 뿐, 기지국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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