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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녹지국제병원 문닫나]上 국내 첫 영리병원, 허가 받자 개원 대신 소송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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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병상도 안되는 중국계 작은 병원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국내 첫 영리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 이야기다. 수년 째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건강보험 체계와 의료 공공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한 편에선 일자리 창출과 관광객 증가 등 경제적 이익이 클 것이라 맞서고 있다. 이런 논란 속에서 녹지국제병원은 개원 대신에 소송을 택했다.

19일 제주도와 의료계에 따르면 3월 4일까지 개원해야 하는 녹지국제병원은 지난해 12월 조건부 개원 허가를 받은 뒤 병원 운영에 필요한 의사 등 인력을 확보하지 않고 제주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조건부 허가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부 허가’ 문제다. 제주도의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조건 중 ‘진료 대상자를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함'이라는 부분이 적법하냐는 것이다.

조선비즈

제주도 서귀포시 녹지국제병원 전경. 작년 8월 완공된 녹지국제병원은 지하 1층~지상 3층(연면적 1만8223㎡), 47개 병상 규모로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내과 등 4개 과목을 운영할 예정이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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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지국제병원 사태 흐름

의료법, 제주도특별법 등 현행 법에 따라 영리병원 사업계획서 승인권자는 보건복지부이고 개설 허가권자는 제주도다.

중국 부동산개발회사인 녹지그룹은 2015년 6월 녹지국제병원 설립 승인을 신청해 그 해 12월 보건복지부로부터 ‘녹지국제병원 건립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다. 이후 2016년 4월 녹지그룹은 병원 건립 공사에 착수했다.

이후 2017년 8월 녹지그룹은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신청서’를 제주도에 제출했다. 이어 작년 3월 제주도 숙의형정책개발심의위원회는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문제를 공론화 절차를 거쳐 추진키로 의결한 뒤 숙의형 공론조사위원회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불허(不許)' 권고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작년 12월 5일 제주도는 녹지국제병원 ‘외국인 전용 조건부 개설’ 허가를 내렸다.

제주도가 `외국인 진료 전용`으로 조건부 개설 허가를 내리자, 녹지국제병원 측은 내국인 진료를 막을 경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시사했고, 실제 이달 14일 소송을 제기했다.

◇ 불명확한 법 규정 논란 빌미

이번 소송의 쟁점은 병원 허가 조건 중 ‘진료 대상자를 제주도를 방문하는 외국인 의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함’이라는 내용이 위법한지 여부다.

제주도 영리병원 개설 및 운영에 관한 기초 틀인 ‘제주특별법’ 상에 내국인 진료 제한을 둔 명확한 규정이 없는 게 문제다.

실제 녹지국제병원 측은 "제주특별법과 제주도 보건의료특례 조례에 내국인 진료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면서 제주도의 조건부 허가가 부당하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현재 제주도는 제주특별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외국 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 제한을 명문화하고 이를 어길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제주특별법은 김광수 의원(평화민주당)이 지난달 대표 발의했다.

결국 불명확한 법과 원칙이 영리병원을 둘러싼 논란의 불씨를 키우고 법적 분쟁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도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하지 않더라도 의료법 위반(진료거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보건복지부의 유권 해석이 나왔고, 2015년 복지부가 녹지국제병원 사업계획승인 당시, 녹지 측이 사업계획서에 '외국인 의료관광객 대상 의료 서비스 제공'으로 명시했다는 점을 들어 조건부 허가는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그동안 "영리병원에서 이뤄진 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불가하다"는 방침을 강조해 왔다.

제주도 관계자는 19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개정안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협력을 강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처음부터 법에서 내국인 진료 제한을 한 것은 아니였다"며 "조례나 특별법에 명확한 명시가 없어서 법을 개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17년째 논란만…내달 4일 병원 문 안 열면 허가 취소

녹지국제병원 측은 지난 2017년 8월 제주도에 개설 허가를 신청할 당시 고용 인력을 134명으로 신고했다.하지만 1년 반 가까이 개원이 미뤄지면서 현재는 간호사 15명 등 직원 60여명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이 법적 기한인 3월 4일까지 개원하지 않으면 허가가 취소될 수 있어, 사실상 물거품 될 가능성이 커졌다. 법적 기한을 지키지 않으면 청문회를 거쳐 의료사업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중국 부동산개발회사인 녹지그룹이 100% 투자해 설립한 이 병원은 제주 헬스케어타운 조성 사업 중 하나다. 서귀포 토평동 헬스케어타운 2만8163㎡ 부지에 병원을 비롯한 휴양 콘도미니엄 시설, 웰니스몰, 웰빙 푸드존, 힐링가든, 의료 R&D센터, 안티 에이징 센터 등 헬스케어타운을 세운다는 게 당초 사업계획이다. 하지만 1단계 사업인 병원 사업부터 좌초 위기에 놓이면서 녹지그룹 입장에서는 사업 전체 손실 규모가 수천억원대로 추산돼 제주도를 상대로 행정소송뿐 아니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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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헬스케어타운 사업 부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제공



제주도에 따르면 녹지그룹이 당초 사업계획에 따라 주민들이 내놓은 부지를 매입한 이후 헬스케어타운 조성 사업을 추진해 현재 약 50% 진행했다. 1조3494억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던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조성 사업은 2013년 1월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조성 공사에 착수한 뒤 2017까지 약 6949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1단계 사업으로 추진한 녹지국제병원부터 개원을 앞두고 좌초 기로에 놓이면서 헬스케어타운 사업은 사실상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녹지그룹 입장에서는 손실 규모만 수천억원대로 추산된다.

제주도 관계자는 "헬스케어타운사업이 더 이상 진행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며 "녹지그룹이 자금 문제로 사업을 못하고 있는 데다, 1단계 사업인 병원부터 문제에 걸리니 다음 수순으로 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영리병원
기업이나 민간 투자자 자본으로 세워진 병원. 우리나라에서 병원은 의사나 정부·지방자치단체·학교법인·사회복지재단·의료법인 등 비(非)영리 기관만 세울 수 있다. 비영리병원 형태에서는 병원 수익을 외부로 가져갈 수 없고, 영리병원은 투자 지분만큼 수익금을 투자자가 가져갈 수 있다.

허지윤 기자(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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