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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르포] 전운 감도는 거제…'매각 반대' 대우조선노조 "이달말께 총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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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공포 확산·협력업체 줄도산 우려"…중식집회때 투쟁 분위기 고조

협력업체·주민·정치권 '철회' 한목소리…불꺼진 상가들 더 타격받을까 걱정

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 노조 대규모 집회
(거제=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20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본사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지회 조합원이 동종사(현대중공업) 매각반대를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2019.2.20 image@yna.co.kr



(거제=연합뉴스) 박정헌 기자 =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으로 지난 4년간 수만 명이 떠나는 고통을 감내하며 회사를 겨우 정상화했는데 노동자들이 다시 구조조정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적당한 시기에 총파업에 돌입하는 수밖에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계획을 두고 시민사회 반발이 심해지는 데다 노조도 강경 대응을 예고해 거제지역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20일 정오가 지나자 식사를 마친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소속 노동자들이 선박을 건조 중인 대우조선 야드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날 야드에 모인 노조원 1천여명은 전날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통해 결정된 파업 결의를 위한 중식집회를 열고 매각 저지를 위한 투쟁을 다짐했다.

이들은 '단결! 투쟁!', '생존권 사수' 등이 적힌 깃발을 들거나 머리띠를 메고 구호를 외쳤다.

집회 막바지에는 '악질 현대' 등이라 적힌 인형 3개를 불에 태우는 화형식을 하기도 했다.

야드에는 조선업 경기가 한창 좋지 않을 때인 약 2년 전 수주한 LNG선 등 선박 수십 대가 한창 건조 중이다.

노조는 최근 경기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밀실 야합으로 매각을 추진한다며 수주 공백 등 손해를 감수하고 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이날 중식집회는 총파업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우조선 노조는 보통 파업 결의를 한 뒤 중식집회를 시작으로 서서히 투쟁 수위를 높여가며 총파업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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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종업계 매각 반대한다!"
(거제=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20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본사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지회 조합원이 동종사(현대중공업) 매각반대를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2019.2.20 image@yna.co.kr



그러나 이번과 같은 성격의 중식집회는 90년대 중반 임단협이 진통을 겪으며 노조가 총파업을 선언한 뒤 처음이다.

그간 대우조선에 크고 작은 진통은 있었으나 총파업과 같이 대규모로 노조가 움직이는 것은 이번이 20여년 만에 처음이다.

이마저도 당시 노조는 임단협 결렬을 이유로 총파업 결의만 했을 뿐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만약 이번에 총파업이 현실화한다면 현재의 노조나 사측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단체행동이 발발하는 셈이다.

자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총파업까지 단행할 정도로 노조가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우조선지회 하태준 정책기획실장은 "내달 8일이 본계약 체결이라고 정해졌는데 그전에 매각 결정을 철회토록 하겠다는 게 노조의 방침"이라며 "아직 구체적인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이달 말이나 내달 초에 본격적으로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매번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대우조선이 현대중공업에 매각되면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으며 협력업체도 줄도산할 것"이라며 "지역 정치권에서 도와주겠다고 나서지만 정작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가 추진하는 일이라 눈치만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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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노조, 동종업계 매각반대 집회
(거제=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20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본사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우조선지회 조합원이 동종사(현대중공업) 매각반대를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2019.2.20 image@yna.co.kr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찾아 '거제의 이태원'이라 불리는 거제 옥포동 인근 번화가는 아직 조선업 침체의 상흔이 아물지 않은 듯 건물 곳곳에 '임대' 문구가 붙어 있었다.

조선소와 사원 아파트 인근에 조성된 이곳은 과거 수많은 인파가 북적이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점 곳곳이 문을 닫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으며 일부 대형 프렌차이즈 커피숍 등에만 겨우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는 A(62)씨는 "조선업이 한창 잘 나갈 때 인근 상권도 억대 매출을 올리는 곳이 많았으나 지금은 사정이 정반대"라며 "이제 겨우 경기가 회복되려고 하는데 현대중공업 인수 소식이 들려와 주변 상인들도 걱정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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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거제 상가
(거제=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20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 인근 번화가에 '임대'로 내놓은 상점에 불이 꺼져있다. 2019.2.20 image@yna.co.kr



대우조선 하청업체도 현대중공업 인수 결정에 결사반대 입장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한 하청업체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자기들과 거래를 이어오던 하청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그들과 거제지역 하청업체가 경쟁을 할 수 있게 문을 열어주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며 "거제에 있는 하청업체 전체가 괴멸적 타격을 입고 지역경제도 이에 따라 침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대우조선 사측 관계자들도 이번 매각 결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특히 현직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구속으로 비상사태에 지역과 중앙정부를 연결해 줄 정치권 인사가 부재한 현실이 뼈아프다는 지적이다.

한 대우조선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이 흡수된다고 해서 우리나라 조선업 경쟁력이 올라갈지 의문"이라며 "차라리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서로 견제하며 기술력을 쌓고 경쟁력을 기르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지사라도 있었으면 중앙정부에 직접 지역 사정을 전달해주는 등 원활한 의사소통과 협의가 가능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구속되는 바람에 지금 이 역할을 해줄 정치권 인사가 아무도 없어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정의당 거제시당 등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도 한목소리로 매각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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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거제 상가
(거제=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20일 오후 경남 거제시 옥포동 인근 번화가에 '임대'로 내놓은 상점에 불이 꺼져있다. 2019.2.20 image@yna.co.kr



정의당 거제시당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경쟁국 심사 등으로 수개월이 걸리는 매각 과정에서 대우조선은 영업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며 "소문 때문에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하며 실사 과정에서 기술력이 유출돼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규탄했다.

home12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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