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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컬처톡] 교양있는 어른들의 유치찬란 막장 싸움…연극 '대학살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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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똘레랑스'(tolérance)는 타인의 사상이나 행동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연극 '대학살의 신'에서는 이성과 교양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물론, 이는 교양 있는 '척'했던 인간의 드러난 민낯을 더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무대 위 인물들은 토하고, 술주정을 부리고, 몸싸움을 하며 예상보다 훨씬 처참하게 망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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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배우 송일국(오른쪽부터)과 최정원, 이지하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대학살의 신' 프레스콜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2019.02.19 mironj1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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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대학살의 신'(연출 김태훈)은 아이들 다툼을 중재하려던 두 부부가 벌인 유치 찬란한 설전이 진흙탕 싸움을 번지는 이야기다. 예의범절 혹은 사회생활로 치부된 가식과 위선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과정을 통해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사는 현대인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공연은 11세 두 소년이 놀이터에서 싸우는 소리로 시작된다. 불이 켜지면 앞니 두 개가 부러진 소년 브뤼노의 부모 미셸(송일국)과 베로니끄(이지하), 친구를 때린 소년 페르디낭의 부모 알랭(남경주)과 아네뜨(최정원)가 소파에 앉아있다. 두 소년이 사과하고 화해하면 끝날 일이지만, 부모들은 잘잘못을 정확히 따지며 말꼬리잡기를 하더니 이내 설전을 벌인다. 말 그대로 애들 싸움이 어른 다툼으로 커져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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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배우 남경주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대학살의 신' 프레스콜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2019.02.19 mironj1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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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물들은 각자 고상함과 우아함을 자랑하지만 점차 본색을 드러낸다. 미셸은 평화를 사랑하는 도매상이었지만 결국 소심함과 다혈질이 드러난다. 아프리카에 관심이 많고 인류애가 넘치는 아마추어 작가 베로니끄는 지나친 자의식으로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가정주부이면서 '재테크'에 열심인 아네뜨조차 술을 토하고 엉엉 울며 망가진다. 한시도 쉬지 않고 전화를 받으며 일에 열정적지만 그만큼 가정에 소홀한 변호사 알랭까지 더해지며 막장 싸움이 예고된다.

미묘한 미소와 함께 품위있게 시작된 대화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유치하게 변해간다. 누군가는 찌질해지고, 누군가는 폭력적으로 돌변한다. 아이를 위하려던 모임이 각자 입장에서 서러웠던 것들을 쏟아내는 폭로의 장이 되고, 급기야 남과 여로 나뉘어 성별 대결로 변질된다. 첫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비매너인 이들의 모습에 한바탕 웃음을 쏟아내고 해방감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불현듯 씁쓸함이 찾아온다.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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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배우 송일국(오른쪽)과 이지하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대학살의 신' 프레스콜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2019.02.19 mironj19@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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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대사 하나, 행동 하나, 인물간의 합까지 모든게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 고난도 극이기 때문이다. 90여분의 공연 내내 배우들은 퇴장없이 무대를 지킨다. 배우들은 각자 캐릭터를 너무나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2017년에 이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기에 훨씬 여유롭고 깊어졌다. 남경주, 최정원, 이지하는 말할 것도 없는데다, 특히 마마보이에 특유의 지질함을 능청스럽게 표현하는 송일국이 신선하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의 작품으로 토니상(2009), 올리비에상(2009)부터 대한민국 연극대상(2010), 동아연극상(2010)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극중 미셸의 말버릇을 인용하자면 '단언컨대' 안 보면 후회할 작품이다. 오는 3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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