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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70세에 박사학위, 12과목 중 11과목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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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정 씨, 58세에 대학생 되면서 ‘만학도’ 길 걸어

박사 과정 중 암투병 등 세 차례 큰 수술 견뎌

조리외식경영학 전공 김 씨 “전통음식 맛 살린 간편 한식 개발이 꿈”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학위수여식이 열린 20일 오전. 행사가 시작되기 1시간 전인 오전 10시부터 사진을 찍기 위해 건물 앞에 모여 있는 무리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학사모에 졸업가운 차림이었지만 졸업생을 축하하러 온 부모님의 동년배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스타킹에 뾰족구두를 신고 삼삼오오 셀카를 찍고 있는 학생들과는 달리 주름진 손에 남색 표지의 박사논문을 든 채 자신이 공부했던 호텔관광대학 건물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안경 너머로 미소 짓는 여성의 눈가에 옅은 주름이 졌다.

유독 눈에 띄던 이 여성은 이날 학위(학사, 석·박사, 석박사 통합 포함)를 받은 경희대 학생 4723명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금정 씨(70·여)다. 2007년 경희대 사회교육원에서 외식산업경영학과를 전공해 학사학위를 받은 김 씨는 이후 경희대 조리외식경영학 석사, 박사학위까지 따게 됐다. 58세에 처음 캠퍼스에 발을 디뎌 70세에 졸업하게 된 ‘만학도’다.

김 씨가 학업에 뛰어든 건 ‘공부하지 못한 한(恨)’ 때문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던 김 씨는 수재들만 진학한다던 경기여중, 경기여고에 다녔을 정도로 명석했다. 하지만 가난이 발목을 잡았다. 김 씨는 “어머니가 ‘돈 대줄 사람이 누가 있다고 대학 시험을 보냐’고 말씀하셨던 게 가슴에 사무쳤다”고 말했다.

김 씨가 다시 공부를 하게 될 기회는 환갑을 2년 여 앞둔 2007년에 찾아왔다. 김 씨는 1999년 경기도 양평에 한정식 식당을 열었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전통 한정식 요리법이 기반이 됐다. 2007년 여름, 음식점에 배부되는 잡지 뒷면에 실린 경희대 사회교육원 프로그램 광고가 김 씨 눈에 들어왔다. ‘외식산업경영학과’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김 씨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김 씨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진학을 결정했다.

김 씨에게 사회교육원 프로그램과 석사과정은 비교적 수월했다. 그러나 박사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남들은 3년이면 끝내는 조리외식경영학 박사과정을 김 씨는 5년 만에 겨우 마쳤다.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난소를 드러내는 수술과, 폐암 수술 등 세 차례의 큰 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남편을 잃는 아픔도 겪었다. 그러면서 김 씨는 4학기동안 휴학을 했다. ‘늙어서 맘 편히 놀러 다니지,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며 공부를 그만두라는 주변의 만류도 많았다.

김 씨에게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자 ‘마음의 빚’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부모와 형제자매 없이 혼자 세상에 던져진 김 씨에게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많았는데 그 때 마다 손 내민 은인들이 많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천 원짜리 한 장 없던 김 씨에게 전세금 30만 원을 빌려준 ‘오 부장님’, 박사 진학 당시 ‘나이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들 자리를 뺏는다’며 비판하는 여론을 잠재워준 교수님 등이다. “이렇게까지 나를 도와주는 분이 있는데 내가 시시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책임의식이 컸다”고 말했다. 김 씨의 박사과정 성적은 4.3 만점에 4.275점. 총 12과목에서 한 과목만 제외하고 모두 A+를 받았다.

학위수여식이 열린 경희대 ‘평화의 전당’까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김 씨는 절반 정도 갔을 때 잠시 쉬자며 멈춰 섰다. 3년 전 폐암수술 후 폐기능이 급격히 저하된 탓이었다. 아직 폐암 완치판정을 받지 못한 김 씨는 당분간 건강을 챙기며 외국에 살고 있는 아들도 만나고 올 생각이다. 김 씨는 “요즘 맞벌이 부부,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난 만큼 한국 전통음식의 맛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한식을 개발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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