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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를 선언한 미국이 유럽에 중·단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경우 '대칭적 대응'에 나서 미국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스크바발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와 미국의소리(VOA) 등을 종합하면 푸틴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의회 국정연설에서 "러시아는 먼저 유럽에 배치할 의사가 없다"며 "미국의 계획대로 (중·단거리 미사일이) 유럽대륙에 배치되면 이는 국제안보 정세를 심하게 악화시키고 러시아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경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대칭적이고 대등한 행동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배치국뿐 아니라 미국 본토도 대응공격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 하락세를 의식한 듯 이날 국정연설에서 복지확대 등 국내 문제에 역점을 둔 자세를 선명하게 나타냈다. 다만 외교부문에서는 연설 후반부의 대부분을 할애해 일방적으로 INF를 탈퇴한 미국을 거듭 비판했다. 특히 그는 INF 탈퇴에 따른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최신 무기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대응책이 있다고 경고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그는 또 "미국의 중·단거리 미사일 배치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은 단호할 것"이라며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어떤 조치를 내리기 전 그에 따른 위험도 계산하라"고 경고했다.

냉전시대 군비경쟁을 종식한 문서로 꼽히는 INF는 1987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으로, 사거리가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이 지난 1일 불이행과 탈퇴 방침을 공식 선언함에 따라 6개월이 경과하면 탈퇴절차가 마무리된다.

푸틴 대통령 역시 미국의 탈퇴 선언에 맞서 즉각 러시아의 조약 참여 중단을 밝힌 상태다. 러시아는 그동안 미국이 INF 조약 위반사례로 꼽아온 신형 9M729 순항미사일의 사거리가 500km 미만으로 위반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이 오히려 INF에서 벗어나 신형 미사일 등의 새로운 무기를 생산하거나 유럽 등에 배치하기 위해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구실로 삼고 있다고 반박해왔다. 러시아 국방부는 2021년을 목표로 새로운 지대공 순항미사일과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추진하겠다고도 밝혔다. 푸틴 대통령측도 미·러 관계 봉합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양국 관계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중국, 인도, 일본, 동남아시아와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일본과 평화조약 체결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빈곤, 건강, 환경, 교육문제와 관련한 대책을 발표하고, 비즈니스 환경 조성과 첨단 산업 성장에도 역점을 두기로 했다. 이는 대러제재 장기화로 경기가 침체되며 외교보다 국민생활에 밀접한 국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국내 문제에 중점을 둔 배경에는 지지율 하락이 있다. 연금수급 연령 조정 문제를 계기로 80%를 웃돌던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60%대까지 떨어졌다"고 전했다. 통상 푸틴 대통령의 연례 국정연설은 12월에 실시돼왔다. 올해는 3월에 개최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지율 하락 움직임에 따라 2월로 당긴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