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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사설] 통상임금 판결 때마다 기업이 휘청휘청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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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은 22일 기아차 노조 소속 2만7000여 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했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관건이 되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은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추가 수당 지급으로 기업 운영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할 때 적용되는 것이 신의칙이다. 2013년 이후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에서만 약 200건의 통상임금 소송이 제기됐는데 신의칙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일일이 법원 판단에 맡겨야 하고 기업에 따라 결론이 제각각이다. 심지어 같은 기업을 놓고도 1심과 2심, 3심의 판단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렇다 보니 소송을 제기하는 근로자도, 당하는 기업도 불만이다. 2011년 시작된 기아차 소송은 벌써 9년째 진행돼 왔다. 소송 절차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고 원금 외 이자 부담도 계속 늘고 있다.

최근 법원은 신의칙을 한층 엄격하게 적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달 14일 시영운수 통상임금 소송 판결에서 대법원은 1·2심 판단을 깨고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다. 체불임금을 지급했을 때 회사가 도산할 정도가 아니면 신의칙 적용이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17년 광주고등법원은 금호타이어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을 폭넓게 해석했다. 재판부는 금호타이어의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도 이를 소급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봤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노사가 합의한 과거 임금 인상폭이 실제보다 줄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대법원 판결로 통상임금 기준이 확립된 것이 2013년인데 이전 임금에까지 소급 적용하는 것은 기업에 일방적으로 불리하다.

신의칙의 제한적 적용은 노조의 소송 의지를 북돋워 더 많은 관련 소송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때마다 기업은 휘청휘청할 것이다. 경영상 어려움을 제3자가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소송에서 패소한 회사는 당장 망하지는 않더라도 경쟁력에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비객관적 잣대로 그때그때 판결 시류에 기업 운명을 맡기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국회는 신의칙의 세부 적용기준을 입법해 이런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대법원도 관련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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