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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도시살롱] 로봇과 경쟁하는 밀레니얼의 N잡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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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이탈리아 주류 아마로 몬테네그로는 작년 말 재미있는 광고를 내놓았다. 여러 직업군의 사람들이 로봇과 경쟁하다 그 압도적 차이에 좌절감을 겪는데, 일이 끝나고 난 뒤 그 사람들이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Human spirit'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보여주는, 꽤 잘 만든 광고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취업준비생인 스물 중반 후배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럼 인간은 술 마시는 것 말고는 로봇보다 잘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말이야?" 보편적 최저소득의 대두와 함께, 로봇 혹은 더 나아가 인공지능과 경쟁해 사회에서 자리 잡아야 하는 Z세대의 불만을 여실히 보여준 상황이었다. 그들 세대 스스로 어떤 직업적인 미래를 꿈꿔야 할지 불안한 것이 현실이다.

스콧 갤러웨이는 그의 저서 '플랫폼 제국의 미래'에서 자동화된 생산공정과 단순 노동으로 인한 미국 노동인구의 대거 실직을 예고하며 "우리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

이는 미국만의 불안감이 아니라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이 생중계되던 때 지인들의 단톡방에서는 '로봇이 당신의 직업을 대체하게 될까'라는 웹사이트가 반복적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이 사이트에 들어가 나의 직업을 검색하면 20년 내에 나의 직업이 자동화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분석해 보여주는데, 바텐더나 은행 창구 직원 같은 예상 가능한 직업 외에도 법률보조원 같은 의외의 직업이 대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오자 단톡방이 한숨으로 가득 찼다. 20년 후에는 뭘로 먹고살지로 시작된 대화는 얼른 인공지능에 직업적 노하우를 전수하고 은퇴하자는 농담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단톡방에서 유일한 Z세대 한 명이 말했다. "'경력직만 뽑는다면 신입은 도대체 어디서 경력을 쌓으라는 걸까'라는 농담이 이제 '로봇에만 일을 준다면 나는 어디서 업무를 배워야 할까'로 바뀌겠네요."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미 진부한 이야기지만 밀레니얼, 특히 Z세대에게는 언젠가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마음의 각오가 아니라 애초에 직업을 선택할 때부터 기본 전제가 된다는 것이 변화의 핵심이다. 이런 변화는 현재 주요 노동인구로 부상한 밀레니얼에게 대두되고 있는 기그 이코노미(gig economy) 혹은 N잡러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이는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라는 체계에 얽매이지 않고, 수요가 있을 때 원하는 만큼만 노동력을 제공하는 형태의 업무다. 낮에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우버 드라이버로 일하고, 주말에 시간이 나면 태스크래빗(심부름 업체)에서 일거리를 받는 미국의 풍경은 이미 낯설지 않아서, 미국 내 기그 이코노미 종사자는 2020년에 92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작년부터 시작된 쿠팡플렉서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인이 시간이 나는 만큼 쿠팡 배송 업무를 맡아 할 수 있는 제도인데, 이 밖에도 쿠팡이츠·우버이츠, 애니맨과 같은 온디맨드 서비스의 급성장과 함께 국내 기그 이코노미의 성장이 밀레니얼이 일하는 풍경을 바꿔 놓고 있다.

이런 상황은 재미있는 반대 현상을 가져온다. 자신의 커리어를 넓은 범위로 전문화하고 N잡러의 삶을 살아가는 밀레니얼이 늘어나는 반면, 그건 그냥 비정규직이 아니냐는 불만과 함께 공무원과 같이 고용 안전을 보장하는 직업에 몰리는 인구도 증가하는 현상이다. 한국은 비정규직으로 1년 이상 근무했을 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3~35%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꼴찌 수준이다. 몇 년간 열심히 일해도 계속 비정규직을 전전할 수 있다는 불안이 고용 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 공시생 러시 현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온갖 신조어가 시대의 변화를 풍자하고 있지만, 일이 우리 삶의 시간에서 차지하는 지대한 크기는 여전하다. 로봇과 인공지능의 시대가 새로운 세대의 일터에 오히려 좋은 기회를 가져다주기를, 밀레니얼과 Z세대의 노력의 끝에서 희망 있는 반전을 기대해본다.

[이아연 셰어하우스 우주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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