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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세상사는 이야기] `https 차단`과 국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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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아이돌 그룹의 외모가 정답처럼 여겨지는 건 나도 불편하다. 시청자 입장에서 말이다. 뉴스를 주관하는 입장에서도 도박, 음란물과 성범죄의 연관성은 여전히 인화성이 있는 탓에 늘 그곳에 시선을 멈추게 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정부가 들어올지 예상 못 했다.

최근 두 건의 시도가 논란에 불을 붙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비인형' 같은 아이돌, 성차별을 부추기니 출연 횟수를 줄여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여성가족부가 내렸다고 한다. 여론이 들끓자 결국 며칠 전 수정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나 '먹방'도 손대려 했던 정부의 관성이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다.

인터넷에서 정부가 찍은 도박장·성인물 가게는 들어가지 말라는 보안접속(https) 차단은 어떤가. 불법 도박과 동영상이 개인과 가정에 미치는 폐해는 반드시 물리쳐야 한다. 그러나 정책엔 늘 '당위'와 '현실'의 양면성이 따라다니기 마련, 때아닌 '금서논란'에 청와대 청원이 20만명을 넘겼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자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국가가 할 일인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이돌 해프닝을 보자.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론 프로그램 선택권은 국민에게 있어야 하고 외모 지상주의 개선의 과제는 방송사 자체에서 강제해야 한다. 그런데 '갑툭튀' 같은 지침이 떨어진 거다. 여가부가 언급하는 획일적 외모란 어떠한 기준에 따른 것인가. 평등한 외모는 누가 기준을 정하는가. 정부의 결정과 자의적 판단이 혼재되고 있다.

보안접속 https(인터넷 정보 교환 방식 http에 암호 형태로 보안을 강화한 형태) 건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일까. 서버를 보고 단속할 수 있다고 해명하지만 업자들이 가게 대문에 '저 나쁜 거 팝니다'를 써 붙이는 것도 아니고 잡히지 않고자 하는 사람들의 우회 기술은 잡고자 하는 기술에 늘 한발 앞서기 마련이었다. 다른 나라들이 의지가 없어서 이 방법을 택하지 않은 게 아닐 것이다. 실효성 여부가 관건이었을 것이다.

공동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정치적·종교적 이슈를 단속하는 중국과 중동에 비유되는 위험을 구태여 자초할 필요가 있을까 한다.

이들 나라는 모든 국민이 국가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통제하는 곳이다. 대외적으로 시장경제를 추구하므로 내부의 획일성이 자주 수면 위에 노출되지 않았을 뿐이다. 국민을 통으로 지배하기 위해 거대 담론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국민이 역사적 운동의 주체라는 의식을 심어주면서 대신 개개인의 자유공간을 줄여나간다. 정체성과 개성도 전체 안에 녹아든다. 극적 일체감을 도모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 그리고 선택하고 이동할 자유를 제한하니 국민들 개개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곰돌이 '푸우'가 검색 불가일 정도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의 자유민주주의가 폭이 넓어진 건 책임을 완수한다는 전제로 개인의 자율을 존중해왔기 때문이었다. 법적으로도 공익의 의도가 있었다고 판단되면 명예훼손 대신 '표현의 자유' 손을 올려주고 있는 추세를 목격한다. 어렵게 쌓아놓은 인민주권인데 21세기에 감시와 통제의 우려가 등장하는 건 퇴행이다. 국가와 개인의 영역이 뒤섞인 탓이다. 빈번하게 쏟아지는 공적인 호소, 하루 살기 빠듯한 국민들은 돌아볼 여유가 없다.

이번 건도 좋은 취지라고 발표되었어도 뒤집으면 또 공무원 좋은 규제 아니던가, '짧은 치마 하얀 피부'는 업계의 자정 노력을 기대해도 좋았을 것이고. '건강한 인터넷 문화 창달'도 미리 몇 군데 두드리고 여론을 들었다면 이런 소모전을 벌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사이, 정작 정부가 공력을 들여야 할 진짜배기 일들이 빛을 보지 못했다.

[김은혜 MBN 앵커·특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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