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기자의 시각] "노오력하라"는 고용부 장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손호영 사회정책부 기자


지난 20일 오후 7시 직장 다니며 애 키우는 엄마 6명, 휴직 중인 엄마 2명, 그만둔 엄마 1명이 서울 용산구 한 건물에 모였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의 고충을 듣겠다며 마련한 자리였다. 정부가 경력 단절 여성을 줄이겠다며 3년간 117조원을 썼는데도 어째서 3년 전이나 지금이나 경단녀 비중(20.5%)이 꼼짝 않고 있는지 '답'을 찾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엄마들이 작심한 듯 쏟아낸 얘기를 압축하면 '제도가 있으면 뭐하나. 현실에선 이용할 수 없는데…'였다. 제도가 있어도 회사 분위기와 형편상 이용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한 엄마가 "유연근무 하겠다고 했더니 팀원들이 '그런 건 큰 기업에서나 하는 거다. 현실을 보라'며 만류했다"고 했다. 유연근무는 남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하고 대신 2시간 먼저 퇴근하는 식으로 개인 사정에 맞춰 일하는 제도다.

다른 엄마가 "우리 회사도 유연근무제 하는 사람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이 엄마는 "퇴근하고 집에 가면 밤 9시"라면서 "친정 엄마가 아이 재우는 시간인데 아이가 제가 왔다고 깰까 봐 일부러 집 주변을 돌다 들어간다"고 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마이크를 잡고 "회사 분위기는 필요하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얘기해야 바뀐다"고 했다. "정부도 노력하겠지만, 본인들도 그에 걸맞게 노력해서 회사 분위기를 바꾸고, 후배들도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옳은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해 중소기업에서 육아휴직 쓴 사람 세 명 중 한 명(32%)이 복직 후 1년이 안 돼 회사를 떠났다.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체 중 육아휴직제도를 도입한 곳(34%)은 대기업(93%)의 3분의 1 수준이다. 엄마들이 정부에 상응하는 노력을 안 해서 이런 수치가 나오는 걸까.

이날 한 엄마는 본지 기자에게 "육아휴직 이야기했다가 지난번 직장에서 잘려 트라우마로 남았다"며 "노력하라는 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총대를 메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아느냐"고 했다. 출산 당일에도 출근할 만큼 일에 몰두했던 20년 디자이너 경력의 또 다른 엄마는 이런 얘기도 들려줬다. 어렵게 올라간 팀장 자리를 잃을까 봐 육아휴직도 안 쓰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회사에선 "정신 상태가 해이해졌다"며 디자인하던 사람을 외근 영업직으로 발령냈다.

다시 이 장관 차례가 돌아왔다. 그는 "지금 말씀하신 사례는 모두 노동법 위반"이라며 "여러 군데 알아보신 것 같은데, 제일 중요한 데는 안 알아보셨다. 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에게 전화로 문의하셨다고 했는데, 전화로는 안 되고 진정서를 내셔야 하는데 그 절차를 안 밟아서 그렇다"고 했다. 간담회장을 떠나는 엄마들 얼굴이 답답해 보였다.

[손호영 사회정책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