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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꽃에서 느끼는 행복이 '소확행 5위'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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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분석 결과 2018년 최고의 유행어로 ‘소확행’이 뽑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확행과 관련된 키워드로 1위가 책, 2위가 여행, 3위가 영화, 4위가 커피, 5위가 꽃, 6위가 맥주, 7위가 인테리어, 8위가 음악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합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꽃이 5위에 뽑힌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조선비즈

꽃은 소확행과 관련된 키워드 5위로 분석됐다.



꽃에서 소소한 행복감을 얻는다는 것에 대해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꽃이라는 심미적 대상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존재를 마주대하는 것에서 느끼게 되는 기분 좋은 감정입니다.

그러므로 잘라져 물에 꽂힌 절화나 꽃꽂이된 꽃 또는 한데 묶어서 만든 꽃다발이더라도 예쁘거나 향기로우면 행복감을 느끼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이런 경우 굳이 꽃이 아니어도 됩니다. 예를 들어, 자기가 맘에 들어 하는 연예인 사진을 보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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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절화



두 번째는 화단이나 화분에 심어 자신이 직접 기르는 화초에서 느끼는 행복감입니다. 정성 들여 잘 키운 만큼 잘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에서 느끼는 보람 비슷한 감정입니다. 가까운 곳에 놓고 정 주면서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잘 느낍니다.

자식 또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데서 느끼는 행복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반려식물이라는 개념의 용어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경우와 달리 살아 있는 꽃을 대할 때 느껴지는 행복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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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의 시클라멘



세 번째는 야생에 피는 꽃을 찾아가 만나는 데서 느끼는 행복감입니다. 내가 기른 건 아니지만 스스로 살아가는 생명력을 가진 대상을 찾아가서 만나는 기쁨입니다. 이 또한 두 번째 경우처럼 살아 있는 꽃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하며 첫 번째나 두 번째 경우에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연의 생명력을 듬뿍 담고 있는 생명체의 가치가 얼마만한 것인지를 잘 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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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바위틈에 핀 해국



그런데 온실의 화초는 좀 다릅니다. 이는 내가 기른 것도 아니요, 스스로 자란 것도 아닌 대상입니다. 남이 가져다 심어 기른 것을 보는 것이기에 행복감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만약 이들한테서도 소확행 같은 것이 느껴지는 분이 있다면 아마 위에서 제시한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분일 겁니다. 예쁘면 되니까요.

물론 야생에서 피는 꽃이 드문 요즘 같은 시기에는 온실의 화초만 해도 어디냐 싶습니다. 비록 온실에 심어져 있지만 원예종이 아니라 야생에서 살아가는 종인 경우에는 그나마 좀 관심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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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수목원의 난대온실



남부 섬 지역에서 자라며 5~6월에 꽃 피는 자란은 온실에서 벌써 피었습니다. 자줏빛으로 피는 난초라서 자란(紫蘭)이라고 하며 전남 완도나 진도 지역에 많은 편입니다. 난초치고는 덩치가 커서 눈에 잘 띄는 탓에 남획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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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



작디작은 연지골무꽃은 흔히 볼 수 있는 종이 아닙니다. 꽃이 연지를 바른 것처럼 연한 분홍색인 점이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보다는 실물의 크기가 매우 작은 것이 유사종과 구별되는 더 큰 특징입니다.

아무리 키워봤자 어른 손 한 뼘보다 크게 자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제주도의 산굼부리에서 발견된 종이며, 한택식물원이나 국립수목원으로 옮겨 와 심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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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무꽃



제주도에서 자라고 5~6월에 피는 호자나무도 온실에서는 일찌감치 피어 향기를 날립니다. 호랑이 발톱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나무라는 뜻에서 호자(虎刺)나무라고 합니다. 사실 그보다는 가시투성이 동물인 호저(豪豬)를 연상시킵니다. 그만큼 크고 긴 가시가 특징적인 나무입니다. 빨갛게 익는 열매도 매우 인상적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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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자나무



동백나무와 할미꽃은 벌써 피었다가 지는 중입니다. 온실에서 이 겨울에 꽃 피면 수정하기는 어렵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 겨울에 온실 안을 날아다니는 벌들이 있습니다.

작은 파리 종류들도 더러 보이고요. 그네들은 대체 무슨 사명감으로 열심히 돌아다니는 걸까요? 누가 상이라도 주는 걸까요? 동백나무와 할미꽃에 열매가 맺히면 분명 그네들의 수고에 의한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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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미꽃



자생종이 아닌 것으로는 부겐빌레아를 흔히 봅니다. 덩굴성 식물인 부겐빌레아는 이제나 저제나 온실 탈출을 꿈꿉니다. 어서 나가게 해달라고 붉게 핀 모습으로 벽에 들러붙어 외칩니다만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 추위에 얼어 죽을 수 있다는 걸 본인만 모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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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 탈출을 꿈꾸는 부겐빌레아



무화과는 새잎이 돋으면서 꽃주머니가 달리는 모습입니다. 이름과 달리 무화과에도 꽃이 달리고 열매도 달립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과실수로 재배하는 무화과는 거의 모두 암그루라 수정되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단위생식을 통해 과낭이 저절로 성숙하는 품종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단위생식이란 정상적인 생식세포의 융합 없이 종자가 형성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우리의 상식을 깨는 식물의 삶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그런 걸 하나하나 알아가는 일만 해도 소확행에 해당합니다. 그렇기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소확행까지 합한다면 꽃은 훨씬 더 높은 순위에 올라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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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나면서 꽃주머니가 달린 무화과



커피보다는 못하지만 맥주보다 나은 소확행을 꽃에서 느끼는 현재의 한국인이 어쩐지 좀 불행하다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지금이야 온실 권하는 겨울이지만 이제 곧 외출 권하는 봄이 올 거니까요. 그러면 더 많은 행복들이 우리 눈 앞에 찾아올 테니까요.

이동혁 풀꽃나무칼럼니스트(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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