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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30억년 전 시아노의 ‘광합성 혁신’, 지구 생태계 뒤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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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천종식의 미생물 오디세이

⑦ 지구 역사와 산소의 등장

대기 중 21% 산소는 지구 생명줄

하지만 원시 지구엔 산소 희박

이 많은 산소 어디서 생겨났을까

30억년 전 등장한 시아노박테리아

이산화탄소 먹고 산소 배출 ‘광합성’

산소 호흡 생물들 등장의 일등공신

식물 세포에도 들어가 공생

녹색 띤 엽록체의 원형 되어

육지 생태계의 산소 공급원 구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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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주요 기업들이 경영 화두로 뽑은 단어가 ‘혁신’이라고 한다. 기업에서 혁신의 가장 극단적인 형식은 바로 기존의 산업을 붕괴시키는 파괴적 혁신일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기존 산업을 대체하기도 한다. 흔히 혁신의 화신으로 스마트폰을 도입한 스티브 잡스를 꼽는다. 최근에는 전자 상거래로 유통업계를 재편한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혁신가로 거론된다. 이런 혁신은 수많은 종류의 생명체가 협력과 경쟁을 하는 생태계에서도 일어난다. 그중에서도 지구 생태계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혁신적인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를 오늘 해보려고 한다. 이 생물은 ‘산소’라는 신규 물질을 만드는 ‘광합성’이라는 첨단 기술을 개발해 지구를 점령하고 다른 생명체의 운명도 결정한 지구 최고의 파괴적 혁신을 이루어냈다.

흔히 우리 주변에 항상 당연히 존재하지만 막상 없으면 큰 곤란을 겪는 경우의 예로 공기를 꼽는다. 사실 공기 중에서 우리가 꼭 필요한 것은 21%를 차지하는 산소다. 산소가 없으면 생물과 생태계엔 어떤 일이 생길까? 필자가 미생물학 수업에서 출제하는 단골 시험문제 중 하나다. “산소가 없으면 모든 생물은 죽습니다. 그러니 생태계도 끝장이 나겠죠.” 이렇게 답한다면 여러분은 오늘 시험에서 빵점을 받을 것이다. 물론 인간을 비롯해 모든 동물은 산소가 없으면 즉사한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산소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생물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원시지구에 산소 선사한 건 식물?

사람은 기본적인 에너지원으로 탄수화물을 사용한다. 그중에 기본이 되는 것이 포도당이라는 물질이다. 오늘 아침에 필자가 먹은 밥에는 녹말이 가득 차 있다. 포도당 여러 개가 염주처럼 사슬로 묶인 이 물질은 벼가 광합성이라는 과정을 통해 만든 것이다. 식물이 하는 광합성은 탄소가 1개인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탄소가 6개인 포도당으로 묶어내는 과정이다. 이때 에너지가 필요한데 태양빛이 사용된다. 태양 에너지로 만들어진 포도당은 입, 위를 거쳐 소장에서 흡수가 된 뒤 피를 타고 온몸의 세포로 전달된다.

세포 안에서 포도당으로부터 에너지를 뽑아내는 과정은 광합성의 반대다. 포도당은 간단한 형태의 이산화탄소로 분해되는데 이때 에너지가 방출된다. 호흡이라 불리는 이 과정에는 산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산소 호흡을 실제로 수행하는 세포 내 기관은 미토콘드리아다. 이 연재의 첫 글(2018년 12월1일치, “내 몸 안에는 여러 세입자가 살고 있다”)에서 언급한 바 있는 미토콘드리아는 바로 십수억년 전에 우리의 세포와 공생하기 위해 이사 온 세균의 후손이다. 이때 입주한 것이 공교롭게도 포도당 분해에 산소를 이용하는 세균이었다. 굳이 산소가 아닌 황산염 같은 다른 화학물질을 써서 포도당을 산화해도 되지만, 아무튼 미토콘드리아의 선조인 세균은 산소를 사용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산소가 꼭 필요하다.

미토콘드리아의 선조가 산소를 이용했던 건 우리에겐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식물이 태양 에너지를 넣어 만든 포도당에서 우리가 필요한 에너지를 다시 뽑아내는 데에는 다른 어떤 물질보다 산소가 유리하다.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세포로 시작한 우리 조상이 수십조개의 세포로 구성된 지금의 거대한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한 데에는 산소의 사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산염과 같은 물질로 포도당을 호흡했다면 과거의 공룡은 물론이고 현재 사람과 같은 크기의 동물로도 진화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가 산소가 없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생물은 산소 호흡 이외의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지질학적 증거를 보면 45억년의 지구 역사에서 앞의 거의 절반 정도 기간엔 대기 중에 산소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첫 생명체의 화석이 약 38억년 전의 것이므로, 산소가 공기 중에 어느 정도 존재하기 시작한 23억년 전까지 15억년 이상 동안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 지구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산소 없이 살아가는 미생물을 보고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반대로 산소 없이 사는 혐기성 미생물의 처지에서는 산소가 없으면 죽어버리는 우리가 이상할 수 있다.

수많은 동물과 식물의 생명줄인 산소는 그럼 어떻게 갑자기 지구상에 나타난 것일까? 지금 시대에 가장 나무가 밀집한 아마존강 유역을 흔히 ‘지구의 허파’로 부르기도 한다. 허파의 역할은 산소를 들이켜고 대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것이라 그 반대의 작용을 하는 밀림의 식물을 허파로 지칭하는 것에는 어폐가 있다. 대신 ‘지구의 산소공장’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식물도 산소가 없으면 살지 못한다. 그러니 지구 최초의 산소는 식물이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광합성 하는 최초의 생명체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바로 과거에 남조류라고 불렀던 ‘시아노박테리아’라는 세균이다. 화석 증거를 볼 때 30억년 전쯤 지구에 출현한 것으로 보이는 이 세균은 산소를 만드는 방식의 광합성을 하는 최초의 생명체였다. 그 후손은 지금도 바닷물과 호수, 강물에 살면서 광합성을 통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태양 에너지로 묶어서 포도당으로 만드는 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지구의 광합성은 육지에서는 식물이, 물에서는 시아노박테리아가 주로 담당하고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세균은 지금도 생태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겨레

23억년 전까지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단세포의 미생물이었고 산소가 없어도 잘 사는 평화로운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이때 파괴적인 생활 방식을 도입한 깡패 같은 생명체가 바로 시아노박테리아다. 우리가 그토록 필요로 하는 산소는 사실 모든 생명체에게는 ‘독’이기도 하다. 산소는 생명체의 기본이 되는 세포 안의 다양한 물질을 공격하는 강한 반응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비롯해 산소를 사용하는 모든 생명체는 산소의 독을 중화하는 방법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산소 때문에 받는 피해는 필연적으로 노화의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산소를 사용하는 원죄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에 녹아 있는 철 이온이 산소와 만나면 물에 더는 녹지 않는 녹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것이 대량으로 만들어지면서 침전된 것으로 보이는 철이 대량으로 함유된 지층들이 전세계에서 발견되어왔다. 이로부터 23억년 전으로 추정되는 시점의 지구 바닷속에는 많은 양의 산소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사건의 주인공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시아노박테리아다. 지구를 점령한 이 세균 덕분에 지구 대기의 산소 농도가 점점 높아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산소는 생명체에게는 강력한 독이이기도 하다. 식물과 동물이 나타나기 전이긴 하지만 과학자들은 미생물 세계의 대멸종이 이때, 즉 전에 없이 산소 농도가 증가하던 때에 일어났다고 믿고 있다. 산소 때문에 많은 미생물이 이때 멸종했지만, 일부는 이를 피해 다양한 환경으로 숨어들었다. 지금도 산소를 피해 사는 혐기성 미생물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땅속을 한번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자랑인 갯벌을 먼저 손꼽을 수 있다. 갯벌은 물이 들락날락하는 습지인데 갯벌 속에는 산소가 거의 없다. 갯벌은 오염물질 정화에 관해선 특별한 능력을 갖춘 중요한 생태계다. 이때 큰 역할을 하는 미생물이 황산염 환원 세균이다. 이 세균은 갯벌로 유입되는 다양한 유기물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는다. 우리는 산소를 이용하지만, 이 미생물은 산소 대신 황산염을 이용해 호흡한다. 이 세균이 이상하게 호흡을 한다고 우습게 볼 문제는 역시 아니다. 이 세균은 산소가 나타나기 전부터 이런 호흡을 해왔기 때문이다.

산소가 없는 또 다른 공간으로는 바로 인간을 비롯한 여러 동물의 대장 속을 꼽을 수 있다. 사람의 대장에는 수백종의 세균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데, 우리가 먹는 음식을 이용해서 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산소가 있으면 즉사한다. 이들은 ‘발효’를 통해 주로 에너지를 얻는다. 발효는 호흡과 달리 포도당과 같은 유기물을 이산화탄소로 끝까지 분해하지 않고 중간에 유기산의 형태로 불완전하게 분해한다. 이때 발생하는 것이 초산(Acetic acid)이나 부티르산(Butyric acid) 같은 물질인데, 사람은 미생물이 발효한 유기산을 다양한 방식으로 이용한다. 이 유기산은 우리의 에너지원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우리 면역계를 조절하는 능력으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대장에서 세균이 만드는 이런 유기산은 몸의 염증을 완화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염증은 비만, 당뇨와 같은 대사질환이나 아토피, 류머티즘성 관절염과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주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고약한 발 냄새의 주요 원인도 바로 세균이 발효를 통해 만드는 유기산이다.

화성도 ‘시아노의 혁신’ 가능할까

엄청난 양의 산소를 대량으로 만들어 다른 경쟁자들을 어두운 곳으로 밀어낸 시아노박테리아는 또 어떤 혁신을 이루어냈을까? 바닷속의 단세포 생물이었던 이 세균은 바다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다에서는 조금만 깊어도 태양빛이 들어오지 않아 광합성이 불가능하다. 다음 목표는 아마도 태양빛이 풍부한 육지로 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시아노박테리아의 다음 전략은 협력과 공생이었다. 약 10억년 전쯤 시아노박테리아는 당시에 단세포 생물이었던 진핵세포(세포핵을 갖춘 세포)와 공생을 시작했다. 아마도 지금 식물의 조상 세포가 시아노박테리아를 잡아먹었는데 소화해서 먹어치우는 대신에 그냥 “너 여기서 살면서 광합성으로 날 좀 도와줘” 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때 공생은 식물의 조상 세포에 새로운 에너지원을 주었고, 이 단세포 생명체는 나중에 진화를 거듭해 다세포 생명체인 지금의 식물이 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식물의 잎 세포에는, 지금은 엽록체라고 불리는 시아노박테리아가 꽉 차 있다.

바다, 강물, 호수에서는 단세포 미생물로, 또 육지에서는 식물의 잎 안에 엽록체로 존재하는 이 세균은 여러 차례의 혁신을 통해 지구를 조용히 점령했다. 첫째는 강력한 독인 산소를 만들어 물속의 다른 경쟁자를 어두운 곳으로 밀어냈고, 두번째는 현명한 공생을 통해 식물의 형태로 육지도 점령했다. 하지만 시아노박테리아가 의도하지 않는 정말 중요한 생태학적인 결과는, 이 세균이 만들어낸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 동물과 식물이 지구상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시아노박테리아가 없었다면 지금의 지구 생태계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혁신가로 손꼽히는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사람을 보낼 구체적인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아마도 화성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것도 10년 안에는 가능할 것이다. 화성에 사람이 거주하는 미래는 과연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인류의 대규모 이주는 대기의 산소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화성에서도 시아노박테리아가 지구에서 이뤘던 ‘산소’ 혁신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시아노박테리아와 같은 혁신가가 나온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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