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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사시사철 지린내 진동"…방치된 순국선열 '강우규 의사 동상' [김기자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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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독에게 폭탄 던진 강우규 의사…'방치된 순국선열' / 각종 오물·노상방뇨로 얼룩져 '지린내까지 진동' / 강 의사 동상 주변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술판 / 서울광장은 술병·토사물·악취까지 '시민의 기피지역' / 동상 위에 비둘기의 배설물이 잔뜩 '눈살' / 3·1 운동 100주년·강우규 의사 의거 100주년

세계일보

조선총독부 제3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암살하고자 폭탄을 던진 서울역 광장에 '왈우 강우규 의사 동상' 세워져 있다.


"볼일 좀 보고 올 테니, 술이나 채워나"

'백발의 독립투사' 강우규 의사 동상이 세워진 서울역 광장. 서울역은 하루 수십만명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교통시설이다. 그뿐만 아니다. 서울역 광장은 노숙인들의 주 근거지가 된 지 오래다. 서울역 광장은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술판이 벌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판을 벌이거나 소란을 피우는가 하면 술에 취한 채 길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도 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일을 앞둔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찾은 서울역 광장. 강 의사 동상은 각종 오물과 지린내까지 풍겼고, 표면은 먼지로 뒤덮여 있거나 부식돼 있었다. 독립투사의 애국혼이 담긴 장소임에도 관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 되다시피 했다. 동상 받침대 주변에는 취객의 노상방뇨로 얼룩져 있었고, 토사물이 변색된 자국이 눈에 띄기도 했다. 서울역 광장 가로수마다 소주병뿐만 아니라 과자 상자 등 술안주로 먹은 뒤 아무렇게 버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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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찾은 서울역 광장. 서울역 광장에는 노숙인들이 둘러앉아 술판이 벌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옆으로 시민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서울역(경의선전철)을 이용하는 김모씨는 "지저분한 동상을 볼 때마다 흉물스러웠어요"라며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가 독립운동가들을 대하는 자세가 이런 행동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기억 속에서 멀어진 독립운동가의 동상 부실 관리와 소홀로 '3.1운동 100주년'과 '강우규 의사 의거 100주년' 의미는 퇴색되고 있었다.

◆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백발의 독립투사' 강우규 의사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강우규 의사. 1859년 6월에 평안남도 덕천군에서 태어난 왈우 강우규 선생은 교육자로 활동했다.

강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조선총독부 제3대 총독에 취임하려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내린 사이토 마코토를 저격하기 위해 그가 타고 있던 마차에 폭탄을 던졌다. 지금 동상이 있는 곳에서 폭탄은 터졌지만, 살짝 빗나가 암살은 실패했다.

강 의사는 현장에서는 붙잡히지 않았으나 약 2주 후 일제 앞잡이의 밀정으로 인해 덜미를 잡혔고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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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우 강우규 의사 동상에는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겠는가"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강우규 의사의 마지막 말씀이 새겨져 있다.


강 의사는 청년들에게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 라고 말하며 청년들의 독립운동을 독려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다.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겠는가"라며 일제 검사의 물음에 답을 남기고 순국했다.

강 의사의 의거로 말미암아 당시 모였던 관리들이 처단됐고 이후 의열투쟁이 전국은 물론 중국, 일본, 대만 등 해외로 뻗어 나가 1930년대 임시정부 산하 한인애국단의 결성으로 맥이 이어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폭탄을 던진 남대문역은 지금의 서울역이 됐다. 서울역 광장에는 이를 추모해 강 의사 동상이 세워져 있다. 건립된 강 의사 동상은 서울 도심에서 찾을 수 있는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 강우규 의사 동상, 각종 오물과 노상방뇨 '몸살'

지난 22일 많은 시민이 강 의사 동상 앞으로 지나다니고 있었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서울역 광장 곳곳에 노숙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날씨가 풀린 탓인지 벌써부터 술 냄새가 코를 찔렸다. 허름한 옷을 두껍게 입은 한 노숙인이 지하철 입구 모퉁이에 기대어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소변을 보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소변을 보는 노숙인에게 떨어져 반대편으로 피해 다니는 시민들도 있었다. 일 마친 남성이 바지를 올리고 술자리로 돌아가자마자 소주와 막걸리를 들이켰다. 노숙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술 냄새가 진동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악취 풍기며 누워 있는 노숙자 틈 사이로 얼굴을 찡그린 채 빠름 걸음으로 지나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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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전 4시에 찾은 서울역 광장. 동상 주변에는 음식물 담겼던 플라스틱 용기와 담배꽁초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곳곳에는 소변 자국으로 누렇게 물들었고, 비릿한 악취가 풍겼다.


밤만 되면 더욱 심각해진다. 화장실을 가는 대신 노상방뇨를 택한다는 것이다. 동상 주변도 다르지 않았다. 지린내가 난다 싶었는데, 동상 주변은 그들의 공중화장실로 쓰이고 있음을 목격되기도 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리낌 없이 볼일을 보는 노숙인을 쉽게 볼 수 있다. 동상 아랫부분은 소변 자국으로 누렇게 물들었고, 비릿한 악취가 풍겼다.

그뿐만 아니다. 서울역 광장 곳곳에는 선명하게 금연구역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하지만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거나 눈치도 보지도 않은 채 동상에 하단에 버리는 시민들도 있다. 지하철 입구나 화단에는 담배를 비벼 끈 흔적이 고스란히 남이 있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꽁초를 던지는 모습은 이곳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대학생 이씨는 "낮에도 겁나지만, 밤만 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걷는 다가오는 노숙인을 많이 봤다. 큰 소리로 싸우기도 해 지나다닐 때마다 무섭다"고 불안감을 드러냈다.

◆ 외면 받는 강우규 의사 동상

서울역 광장은 노숙인 대표적인 밀집 지역. 2018년 현재 서울시가 파악하고 있는 노숙인은 3193명, 이중 거리 노숙을 택한 이들은 290명으로 전체의 9.1% 수준이다. 서울역 인근에서 적게는 200여명에서 많게는 300여명의 노숙인이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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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 인근에는 노숙인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술판이 벌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옆으로 시민들이 지나다니고 있다.


서울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가장 큰 고민은 서울역 광장 내 노숙인 주취·폭력·불안감 등 기초 질서 위반행위다. 서울역 광장은 공공장소임에도 노숙인들의 차지가 돼 이들이 버린 쓰레기와 이불, 술병 등으로 많은 시민으로부터 꺼리는 ‘기피지역’이 됐다. 노숙인들의 끊이지 않는 구걸행위·음주 행패·욕설·고성 등으로 서울역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기관 단체들이 노숙인들에 대한 계도에 힘썼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중구와 용산구는 대형급수차를 동원해 서울역 광장을 정기적으로 물청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숙인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만명의 유동인구가 이용하는 이곳에서 물청소의 효과는 그리 길지 않다. 겨울철에는 보행자 안전상 물청소가 힘들고, 여름철에는 지린내가 강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서울역을 이용하는 한 직장인은 "웬만하면 피해 다니는 수밖에 더 있습니까?"라며 "악취가 나도 어쩔 수 없잖아요"고 말했다. 이날 인근 행사장을 찾은 한 대학생은 "다른 곳도 아니고, 독립투사 동상 관리가 엉성해 놀랐어요. 솔직히 저도 잘 몰랐지만, 알고 나니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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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주변에는 소주병뿐만 아니라 과자 상자 등 술안주로 먹은 뒤 어지렵게 버려져 있다.


강우규 의사가 100년 전 1919년 9월 2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부 총독을 저격한 이곳에 세워진 ‘강우규 의사 동상’이 각종 오물과 분뇨로 얼룩져 보는 이를 씁쓸하게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한 관계자는 "강우규 의사 동상이 현충시설도 등록돼 있지 않아 관리하기가 힘들다"라고 말했다. 서울역 한 관계자는 "서울역 광장을 주기적으로 청소하면서 강우규 의사 동상도 청소하고 있다. 관리는 서울시에서 하는 것으로 돼 있다. 관계기관과 협력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서울역 특성상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긴 힘들다"고 밝혔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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