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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조선업 공룡 탄생, 재벌 특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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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인수 임박… 정부, 독점시장 열어주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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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드라이독에서 건조 중인 선박 / 조성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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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 공룡이 탄생한다.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 KDB산업은행(산업은행)의 매각 제안을 현대중공업이 받아들이면서다. 주체는 산업은행이지만 사실상 정부가 추진하는 ‘빅딜’인 만큼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산업은행의 계획대로 매각이 진행될 경우 현대중공업그룹은 세계 조선시장에서 명실상부한 1위 기업집단으로 올라선다. 조선산업이 ‘슈퍼 빅1’ 체제로 재편되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대우조선 인수에 대해 사내 소식지(인사저널 1321호)를 통해 ‘생존을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생존전략이라는 설명과 달리 조선업계는 이번 인수·합병(M&A)이 현대중공업에 득이 될 것으로 본다. 경쟁입찰 절차 없이 특정 업체에 밀어주는 방식으로 매각이 진행되면서 특혜 시비마저 불거지고 있다. 정부가 특정 기업을 위해 자금조달 방식을 비롯한 맞춤형 매각방안을 짜놓고 독점시장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혜냐 생존이냐에 대한 공방과 별개로 대우조선을 품에 넣은 현대중공업이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원톱’ 체제 전환 이후 현대중공업이 지배하는 조선산업의 생태계는 어떤 모습일까.

10조원대 공적 자금, 인수업체에 혜택

“매각에 앞서 대우조선을 작지만 단단한 회사로 만들어 놓는 데 주력하겠다.”

지난해 11월 열린 대우조선해양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말이다. 최근 매각과정에서 사의를 표명하긴 했지만 정 사장의 발언은 허언에 그치지 않았다. 적어도 실적 면에서 대우조선은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영업이익 7330억원에 이어 지난해에도 3분기까지 7000억원을 기록했다. 2018년 대우조선의 연간 영업이익은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발표된 대우조선 경영정상화안에서 목표치로 설정한 실적을 뛰어넘는 수치다. 당초 경영정상화안이 추정한 2017년 영업이익은 130억원이었다.

향후 실적도 예상치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경영정상화 방안에 담긴 올해부터 2021년까지 매출액은 각각 5조원, 5조원, 6조원. 현재 대우조선의 수주잔액 12조5000억원(2018년 9월 말 기준)과 지난해 4분기 1조원 이상의 추가 수주를 감안하면 실제 매출액은 예상치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5544%였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3분기 215.9%까지 떨어졌다. 부채 리스크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부실을 예상보다 빨리 덜어낸 것이다.

이 시점에 대우조선 인수가 이뤄진다면 부실 정리에 따른 수익효과는 고스란히 새 주인에게 돌아가게 된다. 10조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과 구조조정에 따른 경영정상화 효과를 현대중공업이 누리는 셈이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 인수로 부담해야 할 비용은 조선합작법인과 대우조선 유상증자 대금 6500억원에 불과하다. 대우조선 매각과정에서 재벌 특혜 논란이 빚어진 이유다.

송덕용 회계사는 “국민 세금으로 부실을 떨어냈는데 거기서 생긴 수익이 세금으로 환입되는 게 아니라 현대중공업이 가져가는 꼴”이라며 “정작 산업은행이 단기적으로 가져갈 현금은 없다”고 말했다.

대우조선 인수를 계기로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는 달라진다. 중간지주사인 조선합작법인 아래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등 4개 계열사를 두고 현대중공업지주가 중간지주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선박시장에서 견제를 주고받던 유일한 경쟁사를 인수할 경우 현대중공업그룹은 독점적 경쟁력과 압도적인 교섭력을 갖춘 유일한 기업집단이 된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국내 시장점유율(최근 3년 수주량 기준)은 57%에서 80%까지 확대된다. 사실상 국내 조선시장을 독점하는 셈이다.

그 중에서도 함정과 잠수정 생산 등 방위사업 분야 독점에 따른 파급효과는 두드러진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의 ‘방산업체 경영분석’에 따르면 2017년 함정분야 매출 총 1조6380억원 가운데 대우조선이 8838억원, 현대중공업이 418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소형 함정을 제외하면 사실상 두 회사가 전체 함정 매출의 79.5%를 올린 것이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밝힌 인수계획안에 따르면 향후 발주물량에 대해 현대중공업그룹과 계약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변경사항이 생기면 문제 소지가 있는지 여부를 추가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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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의 한 조선소 직원들이 출근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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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갑 되면 불공정행위 심화될 것” 우려

현대중공업그룹 입장에서는 호재이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반길 일만은 아니다. 방위사업청에서는 사업 진행 시 경쟁입찰을 선호한다. 경쟁과정을 거쳐야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일 업체가 입찰할 경우에는 경쟁이 형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찰시키고 재입찰공고를 내는 게 일반적인 절차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지금은 두 회사 중 조건이 좋은 곳과 거래하거나 품질을 고려해 분배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해왔다”며 “독점체제가 되면 비용은 더 드는 반면 품질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협력·하청업체와의 관계에서도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른바 ‘슈퍼 갑’의 위치에 올라선다. 당장 현장에서는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비롯한 기술탈취 등 불공정행위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 업체에 불공정거래를 강요한 혐의로 현대중공업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현대중공업의 하도급 업체 기술탈취 및 불공정거래 의혹이 도마에 올랐다. 2012년부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를 운영하다 2015년 도산한 한익길 경부산업 대표는 최근 전화통화에서 “갑질을 할 수 있는 더 큰 힘이 생기게 된 것”이라며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억울하게 갑질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독과점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작업은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은행은 이번 거래가 은행 내부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빅딜을 이끄는 배경을 정부로 꼽고 있다. 이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도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점규제법 차원에서 본다면 대우조선 인수건은 정부에서 불허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인위적으로 ‘빅1’을 만들어 놓으면 갑을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조선산업에서 양질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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